오염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3/06/23 03:25 | inureyes
잠시 집에 와 있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지워 이제는 전혀 자신을 기억할 수 없게된 '구' 멀티. 작년 초에 노트북으로 컴퓨터를 바꾼 후 어머니께 드렸다. 드린 후에도 여러 부품 교환이 있어서 이미 얘는 예전의 그 멀티의 반 정도만을 가지고 있다. 남은것은 하드디스크와 케이스 정도이다. 대부분 동생 컴퓨터 업그레이드 시켜주면서 떼어주고 어느새 많이 어정쩡한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CPU가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동생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나니 어머니께서 꽤나 섭섭해하시는 눈치셨다. 그래서 지난 겨울 컴퓨터 부품들을 새로 샀는데 이녀석이 꽤 골치아픈 애들이었다. 안정성있게 구입했으면 좋았을걸 별 생각없이 가격 대강 보고 그냥 사서 끼웠더니 첫날부터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지금은 기억속에만 남아있지만 두번째 멀티녀석때문에 나흘동안 고생했던 그 때의 기분을 느낄 수가 있을 정도였다. 너 왜 이렇게 말을 안듣니. 이리저리 하여 결국 말 잘듣는 아해로 만들기는 했다. 웬걸. 그런데 메인보드에 붙은 소리카드에 스피커를 연결했더니 소리는 나는데 잡음이 너무 많이 섞여 들리는 거였다.

원래 소리카드는 동생 떼 줘버린 후라, 이걸 어쩌나 하다가 그냥 에이 모르겠다 하고선 방치해 두고 학교로 훌쩍 떠나버렸었다. 이번에 집에 오니 동생이 얼마전에 컴퓨터 창자를 빼갔는데, 그 후로 컴퓨터가 기어간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동생보고 그래픽카드를 떼 가라고 했었기 때문에, 내심 찔리는 마음에 이걸 어쩌나 해서 컴퓨터를 틀어보았다. 스피커에선 잡음이 흘러나오고 그래픽은 뚝뚝 끊긴다. 에유. 돈은 없는데.

그래픽이야 그래픽카드가 안좋은 거와 바뀌었으니 어쩔 수가 없다손 치더라도, 저 소리는 해결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화면을 고쳐드릴까요 소리를 고쳐드릴까요 하고 물으니 어머니께서 '소리 잘나게 해다오' 하셨다. 간단하게야 그냥 소리카드 하나 사서 달면 해결되겠지만, 마침 오늘 해리포터 5권 발간일이라 책을 사버리는 바람에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내장 소리카드에서 나는 잡음을 나지 않도록 해보기로 했다.

잡음이 왜 나는걸까 하고 잡음을 잘 들어보니 하드디스크를 읽을때는 읽기에 맞추어 소리가 바뀌었다. 처음 컴퓨터를 켰을 때는 잡음이 나지 않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갑자기 잡음이 나기 시작했다. 볼륨조정기에서 mute로 맟추어도 잡음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발생했다. 이유가 뭘까? 하나하나 뒤집어보기 시작했다.

그 안에 있었던 다양한 과정들은 생략한다. 결론은, PCI버스와 IDE버스에서 데이터 오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였다. 메인보드에는 모든 장치가 지나가는 길을 중재하는 bridge가 있다. 그런데 VIA라는 회사에서 만든 bridge 칩에선 데이터 오염이 일어나는 사례가 가끔 보고되었다는 것을 읽었다. 아마 그러한 데이터 오염이 사운드보드에 작용해서 잡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PCI버스와 IDE버스가 같은 bridge를 통과하면서 데이터를 오염시키나보다. 어떻게 할까? 결국 bridge의 timing을 소프트웨어로 조절해서 네시간만에 해결했다.


컴퓨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모든 존재는 상호작용으로만 존재한다. 예전 사람들은 객체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한 객체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서로를 인지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동일하다. 단순히 개념상으로만 동일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같은 의미이다. 존재는 상호작용 그 자체이다. 존재하는 객체간의 소통이라는 개념은 무의미하다. 그런데 상호작용은 그것으로 상호작용에 의하여 존재하는 객체의 변화를 내포한다. 상호작용후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 상호작용 역시도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에 의한 존재도 없는 것이 된다.

어떤 것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모든 상호작용이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비슷해진다. 자주 접하는 문화는 그에 속한 사람을 동화시킨다. 주로 '닮아간다'고 표현한다.

인간은 서로를 오염시켜간다. 마치 bridge를 지나는 데이터들이 오염되는 것과 비슷하다. 소리와 하드디스크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야 하지만, 소리가 하드디스크가 일할 때 맟추어 잡음을 내는것 처럼 그렇게 오염된다. '닮아간다'는 좋은 말이 있지만 굳이 약간의 좋지않은 의미가 섞인 '오염'을 말하는 이유는, '닮아가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닮아가고, 친한 사람들끼리 닮아가고, 아는 사람들끼리 닮아간다.

그리고 그런 인간군상 이상이 전혀 아닐 사람들을 만나며 세파에 찌들고 사람에 닳는다. 그걸 비켜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것도 인간들 사이의 timing을 조절하지 못한다. 벼를 키울 때는 붙여 짓지 않고 고랑을 판다. 많이 심어야 많은 수확을 얻을 것 같은데도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바람이 통할 공간이 없으면 바로 병에 걸리고 서로 옮아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인간 사이에 그런 공간을 제공할 수가 있나.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에서 '인간은 드디어 천사의 날개를 얻어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는 행복한 말을 한다. 기술의 발달, 정보교환 수단의 발달과 매스컴의 발달이 인간에게 날개가 되어 절망의 시기를 이겨내 갈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슬펐다. 독재자가 평화로운 나라를 점령한 상태에서 보통 사람의 입을 빌려 연설했기 때문에 그랬고, 무엇보다도 오십여년 전의 그의 말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모순 되어서였다. 우리는 서로간의 사이에 있는 고랑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알수없는 여유가 줄어들어버린 우리들의 앞에는 무엇이 남아있을지도 알 수 없다.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작업은 늘어가지만, 그러한 변화가 아이들을 빨리 자라게 한다. 빨리 오염되게 한다. 우리는 한계없는 그렇지만 생각또한 없는 의사소통 속으로 더 빠르게 함입되어 갈 것이고, 그 안에서 서로 병에 걸려버릴 것이다. 우리의 등에 진 날개는 천사의 날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 미하일보다 이카루스의 모습이 우리와 더 가까워보이는 걸까. 모든 것들 사이에 여유가 필요하다. 상호작용이 존재이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항상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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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3 03:25 2003/06/23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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