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삶, painkiller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7/07/09 20:37 | inureyes

사진 보관함 2만장. 그 숫자가, 2만번이 넘도록 CCD를 태우는 동안 어째서 찍는 것엔 익숙한데 보여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담기기를 기대하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시간의 절편을 아직 글 없이 사진 한 장으로 말하기에는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겁나서 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영원한 화두.


*

기숙사 앞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훨씬 화려하게 찾아온다. 그 안에는 봄의 풋풋함도, 가을의 풍성함도 없지만 그 어떤 계절보다 현실감있다. 여름은 가장 원초적인 계절이다. 그 원초적인 끈적끈적함이 싫다. 여름에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지만 그만큼 내가 펄펄 살아 움직이지는 못한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과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시기와 그리고 자포자기.

될대로 되라. 시원한 가을아 얼른 와라.

*

우철형 송별회
시간은 절대 멈추지를 않는다. 그릇에 담아 둘 수도 없기 때문에 마셔버려야 한다. 컵도 없고 바가지도 없기 때문에 그냥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어나갈 뿐이다. 마시고 체하지만 않는다면 '
'현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로이다.

연구실의 사람들이 바뀌고, 선배들이 길을 찾아 가고 후배들이 생기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가끔 웅덩이에 갇힌 것 같은 현실 위에서 '지금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

그것

중학교 시절 부터이지만 예전에는 머리가 가끔 아팠다. 한때는 머리에 병이 있나 생각도 했었었다. 고등학교 시절엔가 패턴을 발견했다. 자율학습으로 밤을 보내던 당시 두통약을 타러 찾아간 교무실에는 교감 선생님만이 계셨고, 약을 달라는 말에 약 대신 차를 한 잔 만들어 주셨었다. '두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이다.'

따뜻한 차를 마시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무엇인가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머리가 아주 아픈 일도, 머리를 낫게 하기 위해 약을 먹는 일도 줄어들었다.

*

등
톨스토이의 소설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작가의 대답에 동의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만나 보았다. 의견을 물으면 항상 그걸 도로 물어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환하다고 생각한 앞은 사실 암연이고, 낭떠러지의 한발짝 앞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 땅도 심해와 같다. 사방에 아구들이 머리에 전등을 달고 작은 고기들을 꼬시는, 칙칙한 줄 알았던 고기를 꺼내놓으니 속이 다 투명해 보이는 그런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물어오면 내가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잘도 묻는다. 사람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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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20:37 2007/07/0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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