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6/01/19 02:58 | inureyes
종현이와 호연이형과 함께 칠곡에 성묘하러 다녀왔다.

혁이가 떠난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여전히 그 곳은 을씨년스러웠다.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는 인부 세 명이 새로운 무덤을 파고 있었다. 눈에 닿는 곳은 전부 동글동글한 엠보싱 처리가 되어있었다.

납골당은 여전했고, 혁이 자리 위에 걸린 조화도 여전히 싱싱했다. 우리는 한 살을 더 먹었지만 재가 되어버린 혁이는 아마 모습도 그대로일 것이었다. 가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했지만 도착해서는 막상 그다지 할 생각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갑안에 챙겨놓은 새 오천원권이 생각났다. 잠겨있는 납골묘 유리문 아래로 일년 사이 새 돈 나왔으니 쓰라고 하려고 챙겼었다. 돌아오는 길에서야 떠오르더라. 가서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스스로 자학하려다 스스로 핑곗거리를 찾아 위안하였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하지만 혁이가 믿던 증산도에서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 줄에 열 다섯들이 납골당과, 위아래로 마구 섞여 들어있던 수많은 종교들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그 망자들의 다양한 나이를 보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종교들을 보게 되었다.


이미 그대는 우리를 잊었으나
우리는 아직 그대를 완전히 잊지 못하였네
그대는 저세상에서 새로운 공부를 찾아 그 안에 푹 빠져 있겠지만
우리는 물리학과 함께 하는 동안엔 그대를 잊지 못할 것이네.


허무하구나 백년을 못가고 사라질 인간의 삶아.
위대하구나 억년을 타고 이어지는 인간의 삶아.

길다면 길고 힘들다면 힘들었던 일 년인데 그 곳에서는 먼지 하나 움직인 만큼도 못되는구나.
먼지 하나 움직이지 않았을 만큼 정지된 死者의 處에서도 산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 속을 빛의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구나.

안녕안녕
다음에 봅세
이젠 정말 정지된 사진이 되어버린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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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9 02:58 2006/01/1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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