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규와 메신저로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도메인을 하나 구입하였다. 연구실 이전 할 때 까지는 도메인을 사야지 했는데 벌써 이전한지 다섯달 째이니, 마음 먹은지 반 년 만이다.
마음 먹는다고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대부분의 알려진 도메인 이름은 등록이 되어있다. 처음부터 경쟁이 덜한 .info 도메인이나 .co.kr을 노렸으면 좋았을텐데 '곧 죽어도 닷컴'이라는 고집때문에 도메인을 고르려고 앉으면 이것저것 넣어보며 시간만 보내기 일쑤였다. 주윗 사람들도 많이들 괴롭혔다. 은진이도 괴롭히고, 종현이도 괴롭혔다. 특히 종현의 경우에는, 그의 방에서 장장 세시간을 죽치고 앉아 결론도 나지 않는 도메인 이름 정하기를 하다가 지쳐 돌아온 적도 있었다.
어제 병규가 호스팅 서비스를 신청하고 도메인을 하나 구입했다고 하였다. theblue.info. 심플한 이름이었다. '잘도 정하였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메신저를 넘어 한 마디가 들어왔다.
"대충 맘에 드는 것과 제일 좋은 것들 놓고 고르면 되지 않나."
그 생각을 안 해 봤겠냐 싶었는데 갑자기 딱 느낌이 오는 것이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과 좋아하는 것으로 이름을 지어보려고 했던 적이 있었나? 존재하는 단어들 중에 마음에 드는 단어들을 골랐었고, 좋아하는 단어들 중에서 가능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단어의 조합이었을 뿐이었다. 어린애가 맘에 드는 낱말 퍼즐을 들고 가지런히 늘어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하였다.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면 나 이외의 주위 사람들도 쓸 수 있는 이름이었으면 좋겠다. (처음에 inureyes를 도메인이름으로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넓은 공간이라는 뜻이 들어가야 한다. '손뜨개질' 이라는 느낌이 좋으니 태터툴즈에 대한 뜻도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태터링과 넓은 공간 - sphere나 field? 등의 조합이 가능해 질 것이다.
그러던 중에 지난주 재윤의 DOG 프로그램에서의 토론이 생각났다. 한국어가 영어에 계속 밀리듯이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굉장히 긴 토론은 영어 (과거에는 한문) 가 가져오는 계급화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그다지 원하지 않는 현재와 미래로 이어졌었다. 그 때의 기분이 생각났다.
그런 이유로 도메인 이름은 누비마루가 되었다. 누비는 순 우리말인 '누비다' 에서, 마루도 순 우리말인 '마루'에서 왔다. 두 겹으로 뜨개질 하는 것을 '누빈다'고 하고, 넓은 언덕을 '마루' 라고 한다. 지어놓고 나니 마음에 꼭 들어서 얼른 도메인을 신청해 버렸다.
그런 이유로 이제 블로그가 곧 누비마루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여러가지 기억과 생각과 추억들을 계속 담는 그릇이 되어주기를.
덧) 실은 누비마루에는 숨겨진 뜻이 하나 더 있다. 내 꿈이 눈내리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마루를 뒤굴뒤굴 구르면서 맘편히 책을 쌓아두고 읽는 것이기 때문에 마루를 누비자는 뜻으로 '누비마루'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