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이 공학 4동에서 공학 3동으로 이전한다. 다른 연구실에 비하여 실험 장비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연구실의 특성상 책과 컴퓨터는 무지막지하게 많다. 2월 2일에 이전하니 그 이전에 모두 물품들을 포장해야 한다. 이런저런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다.
이사는 힘들지만 설렌다. 어린 시절,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잠시 다른 집으로 이사가던 때의 기억이 있다. 같은 동네 안에서 이사가는 것인데도 신이나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 나이에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 기분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가끔 집에서 방배치를 새로 하거나 할 적에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는 했었다.
서울에서 훌쩍 떨어진 포항으로 대학을 오게 되고, 집이 아니라 기숙사에서 살게 된 이후로는 그러한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 기숙사는 내가 속한 곳이 아니고, 잠시 머무르다 갈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2000년의 학기말을 되새김질 해보면, 카트에 컴퓨터만 네 박스를 싣고서(컴퓨터만은 택배로 부칠 수가 없었다) 힘겹게 끌고 가는 모습이 씹힌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노트북과 함께 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짐이라고 할 것은 옷밖에 없게 되었다.
집을 나와 살게 된 지 6년이 흘렀다. 집에의 유대감도 아련해질만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살고 있는 기숙사 방에 대한 강한 애착도 없으니 공중에 붕 뜬 것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리 좋지 않은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는 기분이기도 하다. 나중에 집에 생기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지내게 될 시간이 얼마나 될 지 상상해보면, 공간에 그렇게 애착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도 가끔은 든다.
연구실 이사는 집 이사와는 다르다. 직장을 옮기는 일이다. 자신의 집이 이사갈 때의 그런 설레임이나 기쁨은 없다. 그런데 종류가 다른 느낌이 있다. 이사와는 관계없는 느낌이다. 아마도 '일'을 할 때의 즐거움인듯 하다. 가장 랩에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이번 이사에 관련된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계획을 세우고 진행시켜 나가는 것은 힘들지만 즐겁다. 그러한 즐거움 덕분에 일의 힘든 정도가 견딜만한 정도 안에서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해 나간다.
어쩌면 마음 속에 잠자는 '집' 에 대한 갈망이 일을 즐겁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집'이 보금자리라든지 쉼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장난감처럼 생각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애착을 쏟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과 같은 기분이 아닐까? 연구실 이사도 제한된 조건 안에서 최대한 편리하고 다양하게 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 '일'을 '놀이' 로 만드는 요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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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이 이사가면서 홈페이지(또는 블로그로 불러도 좋다)도 이사가야 할 것 같다.
플러스의 bluemime 서버에서 언제까지 눌러있으면 편하지만, 사진을 올린다거나 하기는 부담스럽다. 예전에 있었던 '하드디스크 용량 모자라서 sql 데이터 날아갈뻔 한 사건' 을 떠올리면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 사건 이후 최대한 이미지는 올리지 않고 있고, 블로그도 미러블로그가 돌아가고 있다.
연구실이 이사갈 때 블로그도 같이 (현재는 미러링중인) 내 서버로 옮겨 버릴까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려면 도메인 네임도 하나정도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특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해 본지는 두 달 가까이 되었지만 역시 마땅한 도메인 네임이 없다.
기한이 2월 2일로 정해졌으니, 무조건 그 안에 도메인 네임을 정해야 할텐데, 오늘도 머리는 조금 돌아가는 흉내만 내더니 도로 잠잠해졌다. 다른 쪽으로는 온갖 잡생각들을 많이도 만들어 내면서, 왜 유독 도메인 네임은 하나 못 뽑아 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