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자리의 의자가 낮았다. 다리가 너무 굽혀지기도 하고, 키보드가 있는 책상이 너무 높아 답답했다. 방법을 찾으려고 의자를 살펴보아도 특별한 스위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방법을 찾았다. 의자를 한 방향으로 계속 돌리면 되는거였다. 생각이 많아지면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도는 버릇이 있는데, 매일 그러다보니 의자가 낮아질 수 있는 한도까지 낮아진거였다. 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돌렸다. 앉아보니 편해졌다. 낮은 의자 생활이 오래되어서였을까. 돌리다보니 의자가 원하는 높이보다 약간 높아졌다. 높은 의자가 편해서 그냥 이대로 써볼까 싶었다. 이 주 정도를 그렇게 생활했나보다. 팔목도 너무 아프고,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느낌이 너무 거슬려서 반대 방향으로 몇 바퀴 돌려 높이를 적당하게 맞추었다.
신기한 일이다. 의자가 낮았을 때는 어떻게든 높이려고 노력했는데, 막상 너무 높아져 똑같이 '불편했음에도' 그냥 참고 있었다. 가만 놓아두면 높이가 낮아질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목적 때문에 방법을 찾아내는 태도의 부작용으로, 어느 순간 목적이 아닌 방법에 천착한다.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만, 인생은 의지가 있어야 전진한다. 그런데 항상 전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삶이 어느 정도나 관성적으로 움직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관성의 힘은 정지할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도 적용된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좋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좋아서 그에 만족해서 획일적인 삶이 되는 것도 나쁠 것이다.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성찰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현재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인생을 위해 '머무른다' 또는 '전진한다'는 방법을 중요하게 여길 수록,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기 쉬워진다.
자신이 하염없이 현재의 상태에 머물러 있든,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든, 어느쪽이든 관성에 젖어있지 않은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마라. 달리고 있으면 멈춰라. 멈춰 있다면 달려라. 어렵지만 쉬운 일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