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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4/12/13 03:09 | inureyes
일요일 오후 바다에 다녀왔다.

별다른 생각 없이 혼자 나섰는데 도착해보니 바다였다. 방파제 위로 갯내음이 스쳐가고, 전구를 가득 단 배가 통통거리며 항구를 막 떠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고 줄지은 배들은 흔들거렸다.

어두침침하던 하늘이 구름이 걷히며 바다가 되었다. 파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디메에서부터 줄지어 다가왔다. 바로 눈 아래의 바다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무얼 알 수 있으랴.

대학에 들어와 너무 오랫동안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살아왔다. 사람이 적으니 그 안에서 아둥바둥대는 것을 쉼없이 보았다. 작기는 하지만 학교도 하나의 사회이고,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델로스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버스 안의 시끌벅적한 중학생들의 학원타령, 보따리를 내려놓고 어디 앉을 곳이 없나 눈을 부라리는 아주머니의 위압감, 꽃단장하고 차려입고서는 입에선 씨x년 개x놈으로 도배가 된 어떤 아가씨, 그리고 일요일에도 일터에 나가고 들어오는 버스안을 가득 메운 버스사람들. 대구에서 과메기를 찾아 하염없이 꼬리를 물고 내려오는 자가용사람들을 지긋이 내려다보며 '시벨놈들'을 내뱉는 아마도 포항토박이 할아버지. TV에도, 신문에도, 인터넷에도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버스사람들과 자가용사람들 사이에도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어디에 존재하는것인가.

20인치 가량의 납작- 또는 글래머 모니터에 눈을 저당잡히고서는 그것만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능력으로 보아 아마 신인가보다. 아마 신도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켜보기는 하지만 되어본 적은 없거든. 아마 그래서 예수가 태어났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내 눈으로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리고 있던 나도 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내가 뭘 알고 있으랴.

어느곳에도 세상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의 서로간의 관계속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 그립다.
개개인의 쓰레기통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없이 그저 살아가는 모습들만을 볼 수 있는 곳이 그립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웃고 울며 살아 가고 있을 모습들을 마음이 터지도록 쟁여넣고싶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렇게 속에 세상을 채워넣고 싶다.




북부해수욕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겨울바다를 완상하고 있었다. 겨울 바닷바람은 특별하다. 과메기를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는가 하면, 여름에는 죽도록 뛰던 아이들을 얌전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겨울바다에 가면 사람들은 사람을 보지 않고 바다를 본다. 여름바다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지만, 겨울바다는 수영에의 유혹이나 오색 수영복의 꾸밈이 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언으로 화답할 뿐이다.

바다앞에 서서 생각없는 생각을 하였다.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이 청산유수(靑山流水)이니라.” 얼마전 숭산스님이 입적하며 남긴 임종계를 떠올렸다. 종교의 벽을 넘어 파도와 함께 그 말이 밀려왔다.

인간이라, 같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의지는 같은 곳을 가리킨다. 바다를 보며 바다가 아닌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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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03:09 2004/12/1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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