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출장을 마치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다가 문득 조리대 위에서 설겆이 하지 않은 차 주전자를 발견했다.
설겆이 하지 않은 차 주전자의 아래에 말라있는 차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2주 전에 은진과 앉아서 음악과 함께 오후 내내 차를 마신 생각이 났다. 차를 마신 다음날 부랴부랴 평창과 서울을 넘나든 이 주 간의 출장을 떠났고, 출장 후 바로 이어 설인사를 다녀왔다. 바쁘고 정신 없고 참으로 긴 시간이었는데, 집에선 고작 한 순간일 뿐이다. 내려 앉은 먼지와 축 쳐진 화분만이 그새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 주었다.
오래되지 않았는데 까마득하고, 흐른 시간인데 뽀얀 먼지만 뒤집어 쓴 채로 정지해 있다. 모든 곳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들 하지만, 스스로의 시간마저도 장소에 따라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