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기억력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젼에는 구질구질하게 설명했지만 이제는 그냥 "나 별로 기억력 안좋아" 한마디로 마무리하곤 만다.
기억력은 가끔은 도움이 될 지도 모르지만 살아가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그 이야기까지 하면 대부분은 스스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나쁜 일도 잊지 않으니까 그렇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 시간은 모든 슬픔을 희석시키지만 흐른 시간 자체가 우울이 된다 - 애매한 표현이다. 같은 장소에 다른 시간이 겹쳐질 때의 우울함은 설명하기 힘들다.
어디에서나 느낀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왔다. 걷는 동안 현대아파트 단지는 풀밭과 겹쳐지고, 모 건물은 지금은 사라진 학원과 겹쳐진다. 주차장으로 변한 거리는 차 몇대 없이 한산한 길이 되고 엘리베이터는 은색의 벽에서 노란 페인트벽과 겹쳐진다. 그 중간의 변화가 시선 사이로 스쳐간다.
모든 것들의 변화는 우울하다. 하지만 그러한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다. - 그런 것은 시간을 달려나가며 옆으로 스쳐가는 풍경과 같은 것이다 - 가끔 돌아오는 집에서 이제는 완연한 흰 머리가 된 어머니 아버지를 볼 때, 비로소 시간의 무서움과 함께 돌아오지 않을 시절에 대한 슬픔을 느낀다.
아직도 "이제 곧 불혹이네" 라는 말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자식에게는 가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