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자격 시험을 위한 논문 소양 심사 제출 보고서' 라는 복잡해 보이는 이름을 가진 보고서 퇴고를 좀 전에 마쳤다. 올해부터 추가된 부분인데, 제시된 주제들 중 하나를 골라 여섯쪽짜리 소논문을 쓰는 것이다. 논문이라고 해 봤자 워낙 알려진 주제들이라 딱히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하여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거진 2주간을 소비했다. 의외로 공부해야 할 내용들이 많았고, 알아야 할 사전 지식들도 꽤 있었다. 계산해야 할 것들도 있어서 1월 2일을 예정했는데 5일까지 끌고 오게 되었다.
한국어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가지 의미로 어려운데, 하나는 '한글'이 천시받는 컴퓨터 환경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새물리'양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내라고 했는데, 막상 한국 물리학회 웹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레이텍용 새물리 템플릿은 6년도 더 된 환경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최근의 텍 환경은 유니코드 기반인데, 이 템플릿은 euc-kr 기반에 hlatex 의존성이 잔뜩 들어가 있다. 한참을 고생하다가 결국 새물리 양식을 유니코드용으로 다시 만드는 수고를 한 끝에 텍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새물리 형식으로 논문을 쓰는지 신기할 뿐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영어로만 교육을 받은 자신이었다. 대학 이후에 배운 물리학은 전부 영어가 기본이다. 용어도, 표현도, 설명도, 심지어는 생각도 영어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새물리 형식은 기본 언어가 한국어이고, 그래서 작성 자체가 힘들었다. 분명 한국에서 주욱 교육을 받아 왔는데, 정작 한국어로 논문을 적으려니 영어로 적을 때 보다 사전을 한참 더 찾아야 했다. 물리학 용어 사전을 한참을 찾아 적다보니 한숨이 나왔다.
비슷한 일을 석사 생활 초에 겪은 기억이 있다. 자대 출신의 학생들과 타대에서 대학원으로 진학안 학생들 사이에 물리학 토론이 되질 않았다. 마치 저주내린 바벨탑을 보는 것 같았다. 두달이 지나서야 영어-한국어 물리학 용어 사이의 상관관계를 서로 배우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물리학 용어는 한국어 용어 끼리도 햇갈리는 경우들이 많았다.
harmonic oscillator - 조화 진동자 - 어울림 떨개
용어 하나만 봐도 이러니 그 혼란의 시기는 참으로 괴로웠다. 대학을 졸업해서 대학원에 들어가 타대 출신 학생들을 만나서야 알게 되었던 사실이지만 많은 교재들은 번역본이 있었고, 머리 터져라 풀었던 문제들도 솔루션이 있었다. (다들 모르고 학부 시절을 보냈던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용어집을 한참을 찾아가며 보고서를 쓰며 알게된 것인데, 표준 용어가 복수로 지정된 경우가 많았다. 순우리말 용어로 한참을 바꾸다가, 결국 한자어 기준의 용어까지 병용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예 순우리말로 가면 가든지, GSM이나 CDMA같은 복수표준이 존재하는 무선 이동통신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것인가 싶다. 예전에 삼성동 반디앤 루니스(역시 이 서점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 쌓여있는 전공 서적들의 번역 상태도 저질이었다. 자기 나라 언어로 공부를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간다는 것이 답답하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말보다 영어로 공부하는 것이 훨씬 익숙한 자신과 그 현실이 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