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부터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을 잡고 있었다. 비선형 계획Numerical Optimization의 마지막 숙제. 여덟 문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한 문제도 풀 수가 없었다. 내가 이상한 것인지 문제가 이상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틀 가까이 지속되었다. 책을 다시 읽고, 참고서적들과 문헌을 찾아 보고 문제를 다시 들여다 보았지만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이틀을 꼬박 넘긴 월요일 저녁까지도 한 문제 정도의 진전만 있을 뿐 나머지는 여전히 '풀 수 있으면 풀어보라는' 식으로 읽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 광물과 식물의 우아한 결합체이자 인류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장본인이기도 한 연필은 그 몸을 끊임없이 백지 위에 문대며 의미를 잃은 기호를 뱉어댔다. '원래 네번째 숙제는 없는 것으로 했었는데 왜 내신건가' 로 시작된 잡념은 종이 위에 증명 대신 곰돌이를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때,
무엇인가가 딱 멈췄다. 그림? 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n차원이라 손으로 그려낼 수는 없지만, 견우와 직녀가 만났을 때 느꼈음직한 그런 어떤 것이 스쳐 지나갔고
그 후 방으로 돌아와 세시간동안 여섯 문제를 풀어낸 후에 자려고 누웠다. 남은 하나는 증명 과정을 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내일로 넘기기로 결정.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쌓아가는 과정, 끊임없이 생각을 전개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견디기 힘들다. 마라톤 연습할 때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흘러가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힘들다. 머릿속이 흘러 넘치기 전까지의 그 지루함과 괴로움, 짜증을 그래도 견디게 만드는 동인은 아마 '언젠가 넘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덤)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갑갑함과 짜증이 흘러 넘치면 어떻게 될 지 새 정부도 생각을 좀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