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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1 inureyes 대한민국, 2008년 6월

금요일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웠다. 지난 일주일이 너무나 피곤해서 잠이 쉽게 올 줄 알았는데 눈이 감기지 않았다. '속에 천불이 나서' 잠이 안 왔다. 잠을 자기 위해서 술을 먹으러 나갔다. 새벽공기는 몸을 차게 식혀 주었지만, 타는 가슴속까지 어쩌지는 못했다.

문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굉장히 낮다. 그에 대한 공포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대명제가 실종되고 있다. 그에 대한 정권 차원의 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완전히 (소수 중심의)경제 논리로만 접근한'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한다.

1988년부터 20년동안 대한민국은 국민주권국가로서 자신을 규정하기에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실질적으로 주권재민의 원칙이 구성원 모두에게 받아 들여 진 이후 이제 채 10년이 겨우 넘었다. 오래되지 않은 만큼 약하고, 익숙하지 않은 만큼 불안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주권 민주주의 법치 국가로서의 위치는 그렇게 약한 것이었지만, 그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이나마 국민은 모두 자신이 그러한 국가에서 살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지나친 믿음은 나태를 가져오고, 섣부른 나태는 민주주의 기반의 허약함을 도외시한채 그 다음 목표를 바라보았다. 국민들은 기본권이 보장되기에 잘사는 나라를 원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당연히 기본은 하고 그 이상을 원한' 국민들이, '기본도 몰랐던' 사람들을 자신의 대의 대표로 선출한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이전 정권때 적용되었던 기준을 현재의 내각에 적용시키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 손의 손가락 수에도 못 들어올 때 부터 모두가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법률과 헌법의 울타리가 여전히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실용'과 '경제'라는 내용 없는 레토릭을 지팡이삼아 초법적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현재의 정부와 집권 여당의 태도는 끊임없이 국가의 기본 이념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걸 더이상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으로서의 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 대상이 고위층이라면 더욱 당연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가는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모든 구성원에 대한 고려와 절충을 해야 한다. (이미 훨씬 더 큰 이익을 취하고 있는)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집단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할 권리가 국가에게는 없다.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구성원은 이를 위해 교육 기회의 균등을 국가에게 요구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따라 자본이 교육의 기회를 결정해준다는 사고에 의한 정책은 자본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기회의 균등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게 문제이다. 단지 현재의 정치 세력이 권력을 획득한지 100여일이 지나가고 있을 뿐인데, 그 기간동안 대통령과 그 내각이 한 일은 모두가 대한민국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초중고교생들이 저항권을 행사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민주주의 속에서 태어나 민주주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이다. 자신이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학교에서 배웠으며, 그 내용과 현실이 일치하는 것만을 보았던 세대다. 이 민주주의 1세대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모습에서 두가지 길을 본다. 이들이 2008년에 하게 될 경험이, 국가에 대한 신뢰와 믿음과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에의 확신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그렇지 않으면 미리 상상하기조차 싫은 트라우마를 그 윗세대들처럼 가지게 될까.

촛불을 든다. 명확한 목적이 있다.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시스템은 돌아가며,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촛불을 통해서 강력한 주장을 펼치려고도 하지 않고, 직접적인 어떤 것을 얻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촛불을 들고 저항권을 표출하는 것은 투표에 비하여 훨씬 더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남은 몇 년 간을 버티려면 적어도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과정' 과 '법에 입각한 정부 구성' 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후 과반수를 훌쩍 넘을 집권 여당이 모든 일을 국민들과의 민주주의적 절차 없이 강행하려고 할 때, 약한 여당들이 촛불의 수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펴서 견제 장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이 지랄같은 시간이 제발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기본은 하는 나라' 를 만들기 위해 그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노력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철지난 비디오 돌려 보기를 하는 세상인 것이 속에 불을 키운다.

새벽에 홀로 나간 시장의 주점에서, 목구멍으로 소주를 집어넣어 가슴속의 불을 끄려고 했다. 아는 분들을 두 분 만났다. 그 분들과 소주 네 병을 깠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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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1 06:29 2008/06/0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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