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 해당되는 글 1ATOM

  1. 2008/07/14 inureyes 사람 2

사람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8/07/14 02:39 | inureyes

고백을 특별히 해야 할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을 싫어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동물이고, 그것도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동물이다. 그래서 싫어했다." 실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싫어했는데, 존재 자체가 더럽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이든 역사든 애가 너무 어릴 때 그런 부분을 배우게 되면 환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생물들이 득시글거리는 사람이 싫고, 할 줄 아는 것은 쌓아올리고 도로 부수는 것 밖에 못하는 사람이 싫고, 그랬었다. 그 범위가 타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꽤 오랜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서도 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런 중에도 사람에게서 좋아했던 부분이 있다. 지성과 감정이다.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는 즐거움이나, 희로애락애오욕같은 감정은 좋아했다. 사람을 동물에서 분리시켜 주는 특징이라 좋아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테고. 그냥 '사람은 뇌만 살아있어도 큰 상관은 없는 것이 아닐까' 등의 생각을 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물리학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물리학은 아마도 훨씬 복잡한 이유에서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대상이 양면을 가졌을 때, 의식의 시선에 따라 대상이 정의된다. 언제부터인지 되짚어 갈 수 없을 정도로 느릿한 속도로 변했지만, 어느새 사람을 긍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한강을 건너는 전철에서 서울의 지평선을 보며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또 스스로 무너뜨릴 인공물들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쌓아올릴 인공물들이다. 천만명이 강줄기 하나에 붙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변주를 만드는 사람의 세상. 동물들의 세상이지만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저항하는 동물들의 세상.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연 법칙에 순응하기 아니다. 생명 자체가 자연 법칙을 끊임없이 거스르려고 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여자를 잘 사귀어야 사람이 바뀐다던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격언 한 단어 틀린 곳이 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7/14 02:39 2008/07/14 02:39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ATOM Icon 이 글의 댓글이나 트랙백을 계속 따라가며 보고 싶으신 경우 ATOM 구독기로 이 피드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