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동기들과 시내에 나가 연극 '날 보러와요' 를 본 후 연속으로 영화 '괴물'을 보고 돌아왔다.
이 영화 무섭다. 굉장히 무서운 영화였다. 괴수 영화에 공포 영화의 공식이 입혀졌다. 가장 확실한 공포는 일상성의 비틀림에서 온다. 일반적인 괴수 영화가 고립된 공간이나 인간과의 초월적 차이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일상적이고 개방된 공간에서 '적당한' 크기의 괴물이 어느정도 만만하게 달려오는 것은 괴수 영화로서는 약간의 모헙이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일상이 변하는 모습은 영화에 '공포'를 입힌다. 사방이 열린 공간이면서 동시에 누구도 가족을 돕지 않는 모습이 '하수도'라는 실제 공간과 교묘히 맞물리면서 고립의 느낌까지 가지고 오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는 오히려 일반적인 공포 영화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괴물' 은 위에서 주절거린 이야기에서 영화의 정체성을 따오지 않는다. 괴수 영화도, 공포 영화도 아니면서 그것들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괴물'은 앞의 두가지 속성을 몽땅 가져 오면서도 그를 훨씬 뛰어 넘는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괴물은 한국 사회와 세계 질서 자체이다. 진정한 공포는 그를 대표하는 '사람'에게서 온다.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런 장면은 괴물의 습격이나 뼈다귀를 뱉어내는 부분이 아니라 아버지 강두가 전두엽에 드릴질을 당하는 장면이며, 능력차에서 오는 압도적인 좌절은 괴물과의 사투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그리고 너무나 많이 보아오던) 대응에서 느껴진다.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실과 가장 멀어보이는 괴수 영화가 가장 현실과 가까워 보인다. 정말 괴물이 나타난다면 한심해 보이기만 하는 영화속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안타깝고 화나는 상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대상이 될 것을 생각하면 그것이 공포 아니겠는가.
극중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숙자의 한마디가 마음에 와 박힌다.
"돈이면 다 되는줄 알아?"
이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실 괴물은 저 물에 비친 우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