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근로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4/10/08 04:18 | inureyes
이번학기도 지난학기처럼 학교에서 학기근로를 하고 있다. 지난 학기는 전공도 있고 해서 물리학과 과전산실을 담당했는데, 이번 학기는 발전 홍보팀의 국제 협력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승격되어서 국제 교류 팀이 되었다.)

지난 학기야 원래 하는 일이기도 하고 학기 근로를 할 이유라도 있어서 근로를 했지만, 이번 학기는 다르다. 애초에 학기 근로를 해서 면제받을 학비가 없다. 오히려 시간도 아깝고, 이유없이 그냥 근로하면 의욕 떨어질까봐 일부러 수업을 듣는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화요일 목요일 근로를 가면 예전 고등학교 시절처럼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는 느낌이다.

처음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특기를 조사할 때, 일부러 컴퓨터쪽은 제외했다. 아르바이트로 프로젝트로 많이 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익숙한 일을 해서 실력이나 경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야 당연히 잘 하지 못하는 일이나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여 내 주윗 사람들은 처음 듣고서는 믿지 않는 -하지만 난 분명히 외국어 고등학교 영어과 출신이다- '외국어 관련' 의 일을 해보ㅤㄱㅖㅆ다고 하였고, 지금은 매일 책상에 앉아 포스터에 스티커를 오려 붙이거나 외국에서 날아오는 입학 전형 서류를 정리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즐겁다. 근로학생이지만 머릿속에서의 나는 국제 교류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빈 방학이 없어서 남들 다 가는 인턴 한 번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국제 협력팀에서의 시간들은 여러가지 경험들을 익히는 좋은 시간이 되어주고 있다.

목표가 정해지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철들고 결정권이 손에 들어왔을 때 이후로, 불가능한 최선과 아슬아슬한 차선이 있다면 애초에 차선은 돌아보지 않고 최선에 완전히 쏟아부었다. 차선을 힘들게 이룬다고 해도, 진정 원하는 것이 불가능한 최선의 뒤에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마주치게 된다. 정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왕창 돌아가거나 고생을 하게 되더라도, 아니면 그 불가능성을 몸으로 느끼고 절망하더라도 그 옆길로 눈을 돌리면 안된다.

돌아보면 이것저것 꼬여서 단기 유학은 복수 시간단축 위해 포기했는데도 학교는 예정보다 두 학기를 더 다니고 있다. 게다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 과정에서 말할수 없이 고생했다. 하지만 분명히 목표를 향해서 죽도록 부딪치고 깨졌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다. 적어도, 하고 있는 두 학문과 그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학문들 사이를 잇는 가교들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목표는 제대로 이루지 못했지만, 포기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깨지면서 얻은 것들에 대한 만족이 더 크다. 그러한 과정을 즐겼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 그 과정들 안에 있는 나를 사랑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국제 교류 팀에서의 시간들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으며, 이 시간들이 나중에 좋은 추억과 값진 경험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삶은 5년이나 10년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짧게는 5분후를 내다보지만 동시에 50년후를 마음속에 담고 있어야 성찰에 다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 적당한 길이의 시간 보다는 극단과 극단의 시간 사이를 조율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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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8 04:18 2004/10/08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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