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6개월동안 우리 학교를 방문하고 계신 칼텍 물리학과의 프라우치 교수님 댁에 은진과 함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학기초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두번째 방문때에는 어느정도 낯이 익어서 그런지 스스럼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사모님이 요리를 엄청 좋아하셔서 처음 갔을 때도 식사를 다섯 시간을 하고 왔는데, 이번에도 역시 잠시 먹었다 싶었더니 또 다섯 시간이 흘러 있었다. 오래 식사 하다 보니 처음 방문했을 때에는 식사하다가 테이블에서 졸았었다. (보통때 식사를 10분 이상 넘기지 않기 때문인듯) 이번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처음 방문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70대 중반의 교수님과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거의 말씀을 듣기만 했었다. 두번째 방문때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주로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와 미국, 한국, 일본의 차이등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모님 - 미에상 - 은 일본인이시다. 그러고보니 연애 이야기와 생활 이야기, 따님들 이야기도 들었던 듯.)

식사와 함께 나눈 대화는 굉장히 특별했다. 대화를 통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세대에 의한 벽과 공간적 차이, 언어에 의한 벽들이 존재한다.  세대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하여 생기는 벽이, 언어의 차이와 물리학 때문에 상쇄되었다. 2차 세계대전은 역사이지만 교수님께는 경험이었다. 파인만이나 겔만같은 물리학자들은 교과서나 서적으로 알지만 사모님은 앞집에 살던 파인만씨네 가족사 이야기를 하셨다. (이야기 등장 인물이 교과서 사람들이다. 지금 내가 교수님 나이대 분들을 보듯이 교수님은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하시더라.)

*

은진 말대로 교수님과 사모님의 대화에는 옅게 ‘그리움’이 배어있었다. 그 분들의 자식들이 곧 40대~50대가 된다. 칼텍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아마 연구가 아니라 수업과 강연, 그리고 칼텍 물리학과의 역사歷史로서 역할을 하실 것이다.

하지만 칼텍으로 돌아가셔도 일반물리학 강의를 하실 예정이다. 교수님은 우리와 학과, 학교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을 계속 하셨다. 그리고 “돌아가면 이 부분은 꼭 칼텍에 적용해 보도록 의견을 내야겠다”고 여러 부분을 기록하셨다.  사람이 늙는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또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을 교수님과 사모님 두 분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70이 넘으신 분 들 앞에서 열의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더라.
그리고 세계 각국의 요리를 좀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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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00:54 2007/05/2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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