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여러명이 모여서 살아갑니다. 서로 관계를 이루어 살기 때문에 세상은 복잡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며 변화하지만 세상은 자신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즉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집단 이상의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는 '나라' 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떤 행위 또는 집합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방향이 필요합니다. 국가가 사회라면 국가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람들 모두가 움직이고자 하는 것의 평균이 국가를 움직이는 힘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가는 구성원중의 아주 일부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이를 권력이라고 합니다. 사회는 권력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사회의 변화상에 따라 그 권력이 속한 계층이나 사람이 바뀌지만, 권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무엇일까요? 권력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권력은 정의되지 않습니다. 또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힘이 없어도 권력은 정의되지 않습니다. 권력은 넓은 의미에서의 '의지'를 의미합니다. 의지는 권력은 아니지만 권력의 질료가 됩니다.
의지는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입니다. 권력은 의지를 질료삼아 만들어지는 일부일 뿐입니다. 의지는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고, 그러한 추구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시작한 이후 오랜 세월동안 종교에 기대어 왔습니다. 종교의 탄생은 인류가 사고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은 솔직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필요했습니다. 종교를 벗어던진 인간은 나약합니다. 나는 무엇일까요? 나는 왜 이 곳에 있을까요? 나는 왜 이러한 생각들을 하며 이러한 감정들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일까요? 사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합니다.
그렇지만 위의 어떤 질문이든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끝없는 바닥만이 있습니다. 인간은 기계적인 인과율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나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주 오래전의 인간들은 두려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의미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인간의 실존을 부정합니다. 종교는 만들어진 의미에 의하여 실존을 증명합니다. 종교가 만든 요람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면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인간은 존재하기 위하여 자신을 끊임없이 확인합니다. 그러한 자기 확인의 과정이 부정당할 경우 인간 개개인의 자아는 허무로 대체됩니다.
실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을 증명하기 위하여 의미를 찾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의미는 자기를 속이기 위한 모사일 뿐입니다. 실존을 증명하기 위하여 의지를 구현하는 주체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의지는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고, 그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의지는 믿음입니다. '의미'에서 오는 확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의지로 구현되고, 의지는 의미를 낳고, 의미가 세상을 실제로 존재하게 합니다. 존재 주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인간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게 합니다. 니체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신은 죽었습니다.' 바닥없는 무간지옥 위의 인간에게 땅을 만드는 것은 믿음으로 구현되는 의지입니다.
사고하는 주체에 의하여서만 의지가 구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가려고 합니다. 죽지 않는 것은 의지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일입니다. 위와 다르게 거꾸로 올라가 봅시다. 살아가려는 이유는 생의지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의지를 구현할 수 없는 모든 것에게도 의지가 존재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은 믿음으로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의지를 가집니다. 생의지를 가지는 주체가 세상입니다. 세상은 생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번성케하는 하나의 거대한 존재입니다. 구현하는 주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의지가 존재하고 그러하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문제에 관하여 인과를 혼동하지만,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관점일 뿐입니다.
나약한 인간의 실존을 위해 만들어진 종교는 반대로 종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당성을 존재하기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종교가 단단한 반석위에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재이유를 대신 증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연구가 많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실존의 밑바닥의 바탕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트교에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랑agape이 제일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믿음은 질료입니다. 소망은 믿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의지를 뜻합니다. 믿음이 작용점이라면 소망은 방향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을 바탕으로 소망이 더해져야 사랑agape-생의지-이 가능하게 됩니다. 종교의 금언이지만 이 말은 인간의 실존을 증명하는 의지에 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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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정체에 대해서
Tracked from Daybreakin Things 2005/07/28 14:36저번에 쓴 "인지과학 수업 끝나다"라는 글에서, 나는 마지막에 '나와 다른 사람이 구분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라는 의문을 던졌고 그에 대해 dotty 님과 inureyes 님이 각각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