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4/08/28 16:34 | inureyes
벌써 20대가 반이나 흘렀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짝지를 찾는다. 군대를 다녀와서 아저씨가 되어버린 친구들도, 군대는 안갔지만 초고학번이 되어버린 친구들도 남녀 안가리고 모두모두 달아 올랐다. (...)

이 친구들이 다들 학교에 복학은 했다. 그런데 같은 수업을 듣는 꽤나 시간의 간극이 있는 사람들과 수업을 듣다 보니 별로 말 걸어볼 여지가 없고, 동아리에 다시 들면 상전대접하지 동료대접은 못받는다. 그러다보니 사실 달아오르든 말든 그네들의 열의는 별로 방향잡을 데가 없다. 군대를 안 갔다온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들은? 군대를 안가도 없는 것은 뭔가 없는 이유가 있는거다 -_-; 사람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다보니 어떻게든 남자 여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소개팅이 젤이다. "어디 소개팅 건수 없냐?" 등등의 이야기는 이제 누굴 만나든 너무 흔한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소개팅이 별 실속이 없다는 편견도 세월따라 훌훌 날아가버리고, 어느새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 남자 애인 여자 애인이 쓱쓱 잘도 생기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그걸 지켜보는 열외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와서 별로 소개팅엔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웬일로 소개팅 주선은 가끔 하는 편이다. 소개팅 자리를 선으로 생각하고 나오는 몇몇 친구들이 가끔 머리를 아프게 하긴 하지만 -사실 선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선이 별건가. 어른이 주재하는 소개팅이지- 그럭저럭 대강 잘들 만나는 편이다.

가끔 소개팅을 하기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한 친구는 "그런 만남으로 만들어지는 관계는 납득할 수 없어" 라는 지극히 운명을 신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아직 그런걸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어." 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소개팅을 하지 않던 친구들이 최근엔 너도나도 소개팅을 외치는 터라, 수요공급의 원리와 함께 케인즈가 존경스러워진다.

소개팅을 시켜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이 녀석은 죽어도 소개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애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루는 한강가를 산책하면서 소개팅 해줄테니 해 보라고 채근했다. 그런데 막상 듣게 된 하기 싫다는 이유는 지금까지 들어 왔던 친구들의 이유와는 조금은 달랐다.

내가 공부를 즐겨하는 사람이라 공부하는 것에 대해선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는데, 그런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듯 하다. '학벌' 이라는 지금까지 별로 신경쓰지 않던 단어를 귀에 담아두게 되었다. 사회엔 그런 구조를 유지하는 카르텔이 있어서, 비슷한 정도가 아니면 제약을 받는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대학이 사회에서 매우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네가 소개해 주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화가 좀 났다. 아마도 듣고있던 말에 대한 반감보다는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는 나에 대한 야유가 더 컸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고 채근하던 나도 바보고, 20대 대학생의 창창한 나이에 그런 생각때문에 연애조차 하지 않는 그녀석도 바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벽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에는 그따위 생각은 집어치우라는 말보다는 그 녀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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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8 16:34 2004/08/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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