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한 길이 되었음직하지만 여전히 포항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멀다. 380km의 거리로 셈하던 예전과, 4시간 10분의 시간으로 셈하는 지금의 간극은 갈수록 짧아지는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차이를 극복하고서 여전한 무게를 지닌다.
중앙고속국도와 중부내륙 고속국도, KTX가 생겼지만 여전히 학교는 멀다. 충분히 멀어 생각하기에도 충분하다. 가방엔 랩탑이 없고, 텍스트가 없고, 공책이 없다. 버스 안에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갑자기 다섯 시간 가까이를 덤으로 얻은 셈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머리는 떼어 놓고 올 수 없다는 점이다. 연필이 없어도 생각은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가끔은 생각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다행히도 눈이 있는 덕분에, 생각의 그물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심야의 버스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눈을 압박한다. 어둠 속에 모든 것이 가려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헤드라이트 앞의 길 몇 미터 뿐이다.
새벽의 고속국도는 거대한 차들로 가득하다. 무언의 신호에 따라 1차선 2차선을 번갈아가며 달리는 차들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깨지 않으며 달린다. 요업 차, 가스 차, 택배 차, 코일 운반 차. 차들은 달린다. 사람이 운전하고 있지만 새벽의 차는 그 안에 사람을 담고 있지 않다. 마치 고래들을 보는 듯 하다. 조용하지만 압박을 느낄 수 있는 거대함, 들리지 않지만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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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학부 졸업 예정생들의 논문 중간 발표회를 참관하였다. 리뷰의 수준인 것들도 있었고, 흥미있는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재호의 발표내용을 가장 오래 보았다. 전기장을 걸어주어 일종의 스핀 필터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문제라면 이러한 필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적어도 하나의 막이 수십 나노미터의 단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론물리학 분야인 이현우 교수님은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하셔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실험물리학 분야인 김동언 교수님은 원한다면 옹스트롬 단위로도 쌓아올릴 수 있다고 하셨다. 계산은 실제 시스템의 다양한 요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가지 요소들을 집어넣어 계산해 보면 한 번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해 볼 수 있는 것은 해 보는 것이 좋다. 재호는 싫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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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는 동아리 합동 공연을 보았다. 공연은 갈수록 나아진다. 소리를 잘 못잡는 문제는 여전하다. 매번 이벤트사를 불러 새로 설치를 하니 최적화된 환경을 잡을 수가 없다. 그 문제는 강당의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전에는 해결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외의 공연 그 자체는 갈수록 듣기 좋아지고 있다.
나아지는 이유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바뀌었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나의 선배들과 나를 비교하고, 나와 나의 후배들을 비교해본다. 사람이 다르다. 교육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쌓이고 쌓인다. 교육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너무나 진하게 느낀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인 것 같다.
내 또래의 세대들은 달리기를 좋아한다. 한 줄로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총소리가 땅- 하는 순간 달린다. 죽자사자 달려 결승점에 들어오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좋은 것이다. 이러한 달리기에는 큰 전제가 있다. 모두가 동시에 뛰어야 하고, 같은 시간대에서 모두가 경쟁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많은 친구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과 모의 달리기를 시켜본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전혀 다른 기준에서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 길을 가고 있음에도 그렇게 달리기하는 버릇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 다른 친구들을 보며 '나는 느리다'거나 '나는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조차 예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한 점에서 후배들은 이전의 우리들에 비하여 자유로와 보인다. 적어도 그들은 비교 대상을 자신의 외부에서 찾지는 않는다. 목표가 생기면 일단 그 목표를 향한다. 그 과정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모습들을 본다. 공연을 보면서 그러한 개인들이 목표를 위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보게 된다. 즐겁다.
개인이 주도하여 공연 스케쥴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 역할 분배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모습을 본다. 공연이 더 마음에 들면 수업 하나 둘 정도 스스럼없이 잘라버리는 후배들을 본다. 그렇게 바라보며 조금 더 자유로운 자아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교하는 달리기가 버릇이 되어 무의식중에 자신을 '레디 메이드' 인간으로 만들어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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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덕분에 부득이하게 새벽 버스를 타고 귀향하게 되었다.
새벽 공기는 차에게 특별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새벽에 달리는 차들은 낮에 달리는 차들보다 훨씬 빠르다. 기분 탓으로 돌려 보지만 시침은 원래 돌아가야 할 양보다 30도 정도 덜 돌아갔다.
터미널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왔다. 새벽의 택시는 가까운 목적지를 가진 사람은 태우지 않는 이상한 성질이 있다. 아파트들의 숲 사이를 걸어오면 소리가 난다. 고층 아파트들 사이를 휘감는 바람이 내는 소리이다. 어린 시절 책받침을 말아 불었을 때 나는 소리와 흡사하다.
그렇게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들어오면 한없이 편안한 것을 보니 집 떠나 산지 육 년 째인데도 아직도 여기가 집이긴 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