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9/06/08 14:18 | inureyes

블로그에 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블로그는 기록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그 의견은 '기록의 형태' 에 대하여 정의하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들처럼 다양하다. 그렇지만 블로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블로깅 도구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조금 더 명확하게 만들 수 있다. 기록의 본질과 속성에 대한 것이 아닌, 도구로서의 역할과 그 방식에 초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의 관점에서는 '블로그가 무엇이냐' 에 대한 질문을 '블로그 도구의 어떤 속성이 사용자의 어떤 요구를 만족시키는가' 에 대한 질문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의 질문을 여러번 던지다 보면 블로그의 속성에서 나오는 특수한 문제에 당면한다. '블로그의 사용자는 필자인가 독자인가?' 이 질문은 사용자층을 분리시켜 문제를 두가지 속성으로 나누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문제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다양한 형태의 집필 도구가 있다. 집필 도구들의 최종 표현 형태에 따라 각 집필 도구는 엄청나게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파워포인트를 비교해보자. 식자 형태의 최종 표현물을 만드는 워드와, 연속된 이미지 형태의 최종 표현물을 만드는 파워포인트는 두 도구가 별도로 분리될 만큼 다른 형태의 도구이지만, 둘 모두 본질적으로는 집필 도구이다. 이 예에서는 필자와 독자가 모두 특정한 표현형을 중심으로 정보를 교류하는 것에 합의가 되어 있다. 그렇다면 블로그도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인가?

텍스트큐브는 표현형의 다양화를 위해서 이러저러한 시도를 했다. postack이나 imazine같은 시도도 있었다. 지역로그, 키워드, 미디어로그등의 형태로 표현형의 다양화도 시도해 보았다. 블로그 공개 수준 설정과 함께 이제는 원하는 컨텐츠를 다양한 형태로 묶어 태그나 카테고리에 따라서도 ATOM 형태로 공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성찰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 우리는 너무 기술적으로 접근하였다. 프리젠테이션 레이어를 추가하는 것으로는 본질적인 컨텐츠 소비 관계 -필자가 만들고, 독자가 받아들이는- 에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 수 없다.

도구를 만들어 온지 3년이 넘어서야 기술적인 부분 대신 문화적인 접근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블로그는, 프리젠테이션의 극단에 있다. 아무리 동영상이 붙고 그림이 삽입되어도 블로그는 오롯이 활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이다. 스스로 활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가 이니다. 수많은 특성들이 있을것이고, 나름대로의 답도 다 다를 것이다. 고민 끝에 내린 블로그의 본질은 '나'를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내용의 형태에 구애 받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있다.

1년여간 쌓인 텍스트큐브 2에 대한 문서와 논의들을 찬찬히 모두 다시 읽어보았다. 아직 원래 계획했던 것들 중 (1.8에서 마저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일부가 남아 있지만 텍스트큐브를 통해서 블로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다 해 보았다. 더 나아가야 할 곳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텍스트큐브 2를 위한 논의나 문서의 반은 기술적이고, 나머지 반은 추상적이다. 문서들에는 큰 구멍이 있다. "무엇을 위한 혁신인지"가 명확하지 않거나, 실은 크게 필요가 없는 기능들이 있다. 또한 추상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것이 필자나 독자,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계속 생각하는 중이다. 생각이 끝나면 다시 토론할 것이다.

텍스트큐브 2를 기획하면서 텍스트큐브는 더이상 블로그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기존의 틀 안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이 끝났다면, 이제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만들 차례이다. 그것이 고필이 제안한 N2가 되든, 기존의 계획대로 E2와 T2의 결합이 되든, 아침놀님과 토끼군님이 주가 될 P2처럼 아예 다른 기반의 무엇이 되든 간에1 '나를 중심으로 한 독자와 필자의 관계'라는 본질에 더 충실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충분히 더 고민한 후 시작하자. 우리의 역할은 언제나 'reinventing the wheel' 이 아니라, 'creating obviously new'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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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부 약자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름이 정해질 만큼 구체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06/08 14:18 2009/06/0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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