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 용의 We Rule 이라는 소셜 플랫폼 게임이 있다. 게임 안에서 건물을 세우거나 밭을 일구어서 돈을 벌어 재투자하는 심시티+팜빌류의 게임이다. 특이한 점은 공간상의 건물 배치가 실제 게임의 경제에는 아무 연관이 없는 장식용이라는 점이다. 오직 도시를 보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사용자 대상의 인터페이스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게임을 일주일쯤 돌려본 후에 트위터에 몇가지 정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흥미를 가졌던 점은 건물 배치가 그 사람의 성격 또는 성향을 반영한다는 점이었다. 건물 배치는 게임 내 공간상의 의미는 없지만, 다른 유저에게서 주문을 받고 생산물을 처리하거나 (논을 터치하여) 농사를 편하게 짓기 위한 인터페이스 최적화의 관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여기서 게임과 플레이어간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건설 전략이 다르게 나타난다.
건설 전략은 크게는 건물이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가에 따라 갈린다. 예쁜 마을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건물을 클릭하는 과정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건물 배치 자체가 게임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미적인 부분이나 구조를 추구한다. 건물이 '돈을 많이 벌어서 레벨을 올리기 위한 수단' 으로 생각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전략은 다르게 나타난다. 교역을 중심으로 한 게임을 추구하는 플레이어는 방문자들이 최대한 직관적으로 현재 생산 시설이나 가게에 접근할 수 있도록 건물을 배치한다. 농업을 주로 생각하는 플레이어는 우선적으로 밭을 쉽게 누를 수 있도록 배치한다. 이러한 까닭에, 도시의 구조를 통하여 도시의 주인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얼마 후 흥미를 가진 부분은, 빠르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과 이후에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 간의 경제적 격차와 그에 의해 발생하는 계급 구조였다. 위룰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사람의 도시에 가서 그 곳에 있는 건물에 생산 주문을 넣을 수 있다. 생산 주문을 받은 사람이 물건을 만들어주면 주문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돈과 경험치가 돌아간다. 한 플레이어는 생산과 주문을 합쳐 일정량 이상의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레벨이 오르고 게임내 돈을 벌면 플레이어는 그 돈으로 더 비싼 건물을 지을 수 있다. 비싼 건물은 일반적으로 싼 건물에 비해 물품을 생산하는 시간이 더 걸리지만 더 많은 돈과 경험치를 준다. 처음 시작하는 플레이어들은 빠른 레벨업을 위하여 이미 비싼 건물을 소유한 플레이어의 영지로 들어가 생산 주문을 내고, 그 부자 플레이어는 생산물을 만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또 레벨업을 하게 된다. 따라서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주문을 넣는 계층과 자신의 땅에 들어온 주문만을 처리하는 계층이 나뉜다.
어느정도 기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현상이 생긴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레벨이 오르게 되면 그들도 힘들게 돌아다니며 주문을 넣는 대신 비싼 건물을 지어 호객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 구조는 노동 계급 -주문을 넣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구조에서는 유지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거시경제학의 근본적인 딜레마 하나와 맞닥뜨리게 된다. 잉여 인력의 무한 수급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누구도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게임 회사는 플레이어들의 계층이 다시 나뉘도록 최고 레벨을 상향하였다. 계층은 벌어지기 시작했지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레벨 한계에 묶여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새로운 출발점이 같았던 것이다. 플레이어들의 레벨 분포는 예전보다 훨씬 모여있게 되었다.
이후는 사용자와 게임 회사간의 치열한 전략 대결의 연속이다. 레벨 한계를 올린 후 다시 최고 레벨에 도착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나자 게임 회사는 레벨업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미 레벨이 높고 돈이 많은 플레이어는 그대로이지만,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쉽게 레벨을 올릴 수 없게 되었다. 게임 커뮤니티는 즉각 반발했다. 반발이 정도를 넘었기 때문에 게임 회사는 다시 몇몇 레벨업을 빠르게 하는 건물이나 작물을 도입해야 했다.
게임이 진행되고 영지에 건물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더이상 할 일이 없었다. 이탈을 막기 위해 게임 회사는 새로운 건물들을 계속 공급했다. 하지만 기존의 건물들을 팔고 새로운 건물들을 세우게 되면 일감을 얻어서 레벨업하는 '장사'에 방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플레이어들은 이미 지은 비싼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들을 짓기보다는 새로운 건물들을 계속 더 짓는 쪽을 선택하였다. 남은 영지가 없어졌다. 게임 회사는 패치를 통하여 한 사람당 하나였던 영지를 추가로 4개 더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정 자원이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았던 땅이 갑자기 가치가 떨어졌다.
플레이어들은 이제 가격이 싸진 땅에 루비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루비가 여섯시간마다 열리는 나무인데 따로 주문을 넣거나 하지 않아도 제 때 클릭만 해 주면 보통 저렴한 생산 건물의 1/5 정도의 소량의 경험치와 돈을 준다. 차지하는 공간에 비하여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땅값이 싸졌고, 그 결과로 엄청난 양의 루비 나무가 심겨졌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더이상 돈을 벌거나 경험치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영지를 방문하지 않는다. 소셜 네트워크 게임을 모토로 하는 위룰에서, 플레이어간의 거래나 주문은 이제 정말 잘 아는 사람들 사이가 아니면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계속 지켜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실험은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접해본 위룰은 심리학, 사회학을 거쳐 경제학에 이르는 최적화 전략에 관련된 수많은 이론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한 예였다. 복잡 적응계 시스템에서의 목적이 존재하는 수많은 주체들은 각각의 최적화 전략을 통하여 일종의 불안정 평형 상태를 찾아간다. 위룰은 전략 게임에서 기존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요소중 하나였던 공간 재배치 문제를 게임내의 최적화 문제로 처리하지 않고 외적인 부분으로 대체하였다. 또한 자원의 제약을 걸고 이를 교역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해 묶었다. 이러한 위룰의 특성은 게임 외적인 공간에 수많은 커뮤니티를 탄생시켰다. 커뮤니티들을 통한 정보 소통은 전반부엔 경제 계층 구조의 확립을 가져다 주었고, 후반부에는 상황에 맞는 최적화 전략의 보급이 게임 제작사의 생각의 헛점을 엄청난 속도로 찾아내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온라인에 오프라인이 중첩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지난 10여년간 보아왔다. 그런데 우리가 온-오프라인의 중첩이 가져오는 현상을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가 어느정도 알고 이해하려 하는 것은 인간사회라는 복잡 적응계가 온라인으로 묶이면서 생기는 변화이다. 그러한 변화는 공간의 확장과 거리의 축소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그렇지만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오프라인의 확장으로서의 온라인이 아니라 온-오프라인 사이의 영역에서 새롭게 나타날 영역이다. 사회가 복잡적응계라면 위룰을 통해 본 것과 같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현상을 볼 수도 있지만, 온라인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을 오프라인에서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 시점이 오면 그다지 멀지 않은 장래에 아직 오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온오프라인간의 간극 사이에서 태어날 새로운 영역을 그 영역이 우리를 완전히 둘러싼 후에야 알게 될 것이다.
덧) 위룰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모습중 하나는 레벨이 낮을 때는 생산이나 교역을 위하여 최적화된 구조의 도시를 만들고 레벨이 오르고 돈을 많이 모은 후에는 도시를 (원래 원했을) 특이하거나 효율과 관계없는 구조로 재설계하는 것이었다. 게임을 관통하는 '제약'의 키워드는 그 위의 플레이어들이 실제 세계에서와 유사한 경제 행위를 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의 대부분이 '젊어서 돈 벌고 늙어서 쓰자' 로 수렴했다는 것에 마음이 참 가닐거렸다.
아래는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던 책 목록.
- [1] 오세진. '인간 행동과 심리학' 학지사.
- [2] 플린 콜린트/ 한국지정학연구회 역.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길. (2006)
- [3] 김수행. '알기 쉬운 정치경제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 [4]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2007)
- [5] 제인 포인터/ 박범수 역. '인간 실험 : 바이오스피어2 2년 20분' 알마.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