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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숲을 한참을 가로질러 가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꽉 밟았어. 하마터면 담벼락에 부딪칠 뻔 했네. 이런 깊은 숲 속에 무슨 담벼락이 있는지 참……. 그래도 그걸 보려고 아가씨는 신나하면서 차에서 내렸지. 이번엔 차를 버릴 건가봐. 꽤 단단히 챙겨서 차에서 내렸거든. 발에 닿은 숲 바닥은 딱딱했어. 흙으로 많이 덮여 있기는 하지만 그 아래엔 돌바닥인가봐. 소녀는 바닥을 조심조심 밟으며 발걸음을 옮겼지. 약간이라도 돌바닥이 아닌 듯 하면 혹 함정인가 싶어서 얼른 주위를 밟아서 돌바닥이 느껴지는 대로만 따라갔어.
그렇게 가다가 보니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졌어. 밤일까 하고 아가씨는 생각했지. 해가 어디쯤 있나 하고 보려고 하늘을 바라본 아가씨는 놀라고 말았어. 하늘이 없었거든 아주 높은 곳에 뭐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천정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어. 옆의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느새 기둥이 되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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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큰 집에 들어와 있었지. (아니 집은 아닐까? 이렇게 큰 집 지어서 누가 살겠어? 거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가씨는 안으로 그냥 별 걱정 없이 걸어 들어갔지. 가방에서 손전등을 하나 꺼내서 말야. 전등의 스위치를 꼭 누르니 빛이 짝짝 하고 들어왔어. 불빛에 비친 앞은 텅 빈 채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지. 끝이 보이질 않는데도 아가씨는 그냥 앞으로 걸어가네.
뱀 몇 마리 봤는데 발루 콱 밟아 버리고 죽죽죽 걷다가 보니 배가 고프지. 아, 아가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배가 고프면 움직이질 못하는구나. 가방을 열구 언제 쌌는지 모르고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 샌드위치를 꺼냈어. 그리고 대강 바닥을 툭툭 털고 앉았지. 근데 바닥을 털고 나니 손이 저 손으로 샌드위치를 어떻게 먹어. 그걸 보더니 이번엔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서 졸졸 손에다가 따라서 싹싹 씻네. 그런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불이 꺼졌지.
건전지가 다 나갔나봐. 손전등은 손에 들고 있었으니까 괜찮은데, 막상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까 건전지를 바꾸어 끼울 수도 없지. 일단 아가씨는 새 건전지를 찾으려고 가방을 주섬주섬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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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방을 찾을 수가 없는 거야. 급하게 막 찾다가 손에 잠깐 닿았는데, 그만 손에 힘이 들어가서 좀 밀렸어. 그래서 더욱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지. 아가씨는 당황했어. 주위를 막 더듬더듬 했는데 아무데도 없는 거야. 막 움직이는 바람에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밀려버리고 말았거든.
배고픈데, 얼른 샌드위치 먹어야 하는데 말야. 그렇게 한참 찾다가 아가씨는 힘이 빠졌어. 힘이 빠졌으니까 일단 손을 덜 씻었어도 불빛이 없어도 먹어야지. 왼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들고 아가씨는 한 입 베어 물었어. 정말 맛있게 먹네. 저 아가씨 자신이 가방 찾으면서 왼손에 샌드위치 들고 바닥에 기댔다는 것 알고 있는 걸까? 그런데도 정말 맛있게 먹어. 벌써 다 먹었네. 조금 쉬더니 이번엔 누워 자네 =_=. 피곤하고 배도 부르니 자는 것 당연한가? 그래도 부자연스러워. 이런 환경에서 잠을 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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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도 불이 들어올 리가 없지. 아가씨는 눈을 떠도 눈을 뜬 것 같지 않아서 잠시 놀랐어. 실명했나 생각했다가 금방 다시 손전등을 떠올리고는 휴우 한숨을 쉬도 주위를 막 훑어보았지. 그러다가 가방이 잡혔어. 아가씨는 안심했지. 가방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 하지만 가방을 든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가방을 찾아 들고 보니 계속 가지고 있던 손전등이 이번에는 어디로 갔는지 없는 거야. 손전등을 찾아야지. 그렇지만 역시 이번에도 좌절. 무슨 수로 찾겠어? 우리 눈에도 잘 안 보이는데.
그래도 아가씨 열심히 뒤적뒤적하더니 결국 손전등을 찾아냈어. “찾았다!” 하고서는 가방을 잡는데 웬걸, 이번엔 들고 있던 가방을 무심결에 놓쳐 버린 거야. 아가씨 엄청나게 암담해 하는구나. 하나를 찾으면 하나를 잃어버리고, 다른 것을 또 찾으면 꼭 필요한 다른 것을 또 잃어버리고 하니까. 얼마나 찾아 헤매었을까? 아가씨는 겨우 두 가지를 다 찾았어. (그때까지 두 번 정도는 저런 것 같어. 사실 한 번 실수하면 그 다음엔 잘 안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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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듬거리면서 전지를 넣고 불을 탁 켰지. 아가씨는 놀랐어. 지금까지 앞만 보고 와서 몰랐는데 옆을 보니까 이 큰 통로에도 옆으로 여러 길이 있는 거야.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오지 말 걸 그랬나?’ 하고 아가씨는 생각하고 있지. 그런데 전에 본 노트에는 이곳이 마지막 목적지로 되어 있으니까 궁금한 거야.
정확히 말하면 그 곳에 가면 예전에 알았던 어떤 아저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지. 좋게 헤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아가씨는 원래 어른들은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었거든. 그런데 아주 먼 길을 걸으면서 단지 그 어른이 달랐던 것이지, 어른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던 거지. 그래서 찾아보고 싶었던 걸까? 알 수 없지.
죽 통로만 쫓아갈 수도 없잖아. 이 통로로 갔는데 만일 막다른 곳이면 어떻게 할까? 하긴 747 비행기가 통째로 들어와도 될 정도니 통로라고 하기도 그러네. 그런데 옆으로 난 통로들은 그것보다 조금 더 작았어. 무엇이 나올까봐 아가씨는 왼쪽 앞에 있는 한 통로로 가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보았지. 그런데 그 통로에도 또 옆으로 많이 통로가 나 있는 거야. 아가씨는 고민했지. 저게 뭘까? 어떻게 가면 되지? 하고서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아가씨는 일단 좀 쉬고 가기로 했어.
얼마나 더 흘렀을까? 많이 헤매다 보니까 어디로 가야하는 지도 모르지.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아가씨는 한 쪽에 숨었어.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앞으로 차 한대가 우우 하고 지나갔지. 나무에 눕혀놓았던 사람들 중 그 아이가 좀 나았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어. ‘붙잡혀서 언니소리 듣느니 그냥 혼자 가야지’ 그러고서는 그 생각을 후회할 만큼 또 한참을 헤매었지. 가끔 지나다니는 쥐가 맛있어 보일 때 즈음에 아가씨는 통로의 끝에 도달했어. 통로는 아가씨보다 얼마 크지 않을 정도로 좁아져 있었어.
아가씨는 앞을 보았대요. 딱 막혀있는데 이상한점이 하나 있다면 그 면이 거울이란 것 정도일까? 아가씨는 불빛을 비춰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봤어. 꾀죄죄한 자신을 보며 아가씨는 픽 웃고 말았지. 그리고 거울에 기대앉았어.
세 번째 이야기는 점점 좁아져서 이 거울 앞에서 끝나게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