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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이번 이야기는 멀리 떨어진 곳 멀리 떨어진 시간에서 시작되지. 꽤 붐비는 거리 가운데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구나. 한 손에 햄버거를 들고 나와서 패스트푸드점이 있던 빌딩을 한 번 죽 올려다보고는 길에 잠시 세워두었던 이상하게 생긴 지프를 타네. 햄버거를 입에 문 채로 잠시 달리다가 신호들이 걸리는 동안 우물우물 거리고 있구나.
차는 구불구불 어딘가로 가고 있어. 그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무언가를 받고 또 인사를 하고 있네. 무엇인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온갖 종류의 것들이 지프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지. 가다가 시청에도 들러 무슨 서류인가를 떼고, 또 가다가 알 수 없는 것들을 사고. 노트북도 하나 받았네. 무언가 이상한 것이 많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하긴 차부터 바퀴가 저렇게 큰데 (차보다 더 크네) 다른 것들이 뭐가 이상하겠어? 그렇게 바쁘더니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큰 매장에서 한 눈에 보기에도 잘 포장된 박스를 받아 차에 실어.
음 정말 이상해 보이지만 이제부터 보다가 보면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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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는 천천히 달렸어. 점점 신호등이 줄어들고 차는 어느새 도시 밖을 달리고 있었지. 길을 따라 스쳐가는 마을들도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뜸하게 보이고 있지. 아주 오랫동안을 가더니 그 사람은 차에서 내렸어. 그러더니 머리에 흰 두건을 썼지. 누가 보면 이슬람 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이 그렇게 머리를 감싼 다음 길옆의 마을에서 이것저것을 묻고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어. 한낮이라 엄청나게 더운데도 (이거 한낮이라 더운 것인지 원래 더운 곳인지) 저 사람은 잘도 이야기하고 있어. 더워서 그만 지켜볼까 하는데 그 사람은 도로 차에 탔지.
조금만 가니까 길이 없어졌어. 이 우스꽝스럽게 생긴 지프는 길이 없는 것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모래위로 올랐지 . 그런데 이렇게 차로 사막 한가운데에 올라가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어.
지프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 위를 찬찬히 달렸지. 밤이 되어도 쉬지 않고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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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없이 달려도 차는 멈추지 않았어. 안에선 그 사람이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 먹고. 그래도 차는 저절로 잘 굴러가지. 기름도 필요 없나봐. 이상하게 생긴 지프 천장이 찬찬히 보니까 태양전지거든. 사막에서 멈추게 될 일은 없겠지. 저 무지막지하게 큰 바퀴 때문에 모래가 끼어 멈추게 될 일도 없고.
그렇게 달리다가 눈에 보이는 마을을 통과해서 (신기루니까 가능한 거야.) 어느 순간 차는 멈추었지. 멈춘 곳은 사막이 아니었어. 바퀴 아래가 벽돌이었거든.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은 내렸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밤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서는 차로 도로 올라가서 잠이 들었어. 그리고 다음날 일어난 그 사람은 왁자지껄한 소리에 창문너머로 밖을 내다보았지.
수많은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물건을 팔고 또 사고 있었지. 차는 그 길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어. 그 사람은 그걸 보고 놀랐지. 그런데 정말 기뻐하는 것 같네? 왜 그런지는 조금 더 보고 있으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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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차에서 내렸어. 사람들은 별로 신기해하지 않네. 그 사람은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말했지.
“저, 물을 좀 주실 수 있나요?"
말을 들은 사람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물을 가득 떠다가 그 사람에게 주었어. 물을 마시고 담겨있던 용기를 돌려주려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가지라고 하는 거야. 그 사람은 같이 함박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했지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갔어.
자리에 앉은 그 사람은 짐을 뒤적거리더니 좀 오래된 노트를 하나 꺼내네.
낡은 노트에 끼워진 지도를 꺼내서 열었지. 손가락이 따라가는 끝에는 빨간색 동그라미와 함께 일루저니티라고 쓰여 있어. 그 사람은 다른 노트를 꺼내서 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 마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적기 시작했어. 그 사람은 이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낡은 노트에 쓰여 있는 내용을 따라 지금까지 이곳에 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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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대강 차 안을 정리해놓고 차를 마을 한 구석에 옮겨놓았지. 아무래도 사막 한 가운데의 이런 곳에 차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잖아. 주위엔 차가 한대도 없었거든. 차가 있어도 역시 차보다 더 높은 바퀴를 단 차는 이상해 보이겠지만.
차에서 내려서 앞의 집으로 들어갔지. 그리고 다짜고짜 주인에게 좀 재워달라고 말했어. 주인은 웃으면서 그러라고 하더니 깨끗한 방을 하나 비우고 여기서 하루 쉬어가라고 하는거야. 그 사람은 망설임 하나 없이 그 방에 들어갔지. 대강 씻고 침대에 누웠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대로 잠들어도 될까 싶은데, ‘그럼 뭘 해?’ 하는 동안 벌써 자버리네.
아침이 되었고, 그 사람은 집에서 나와서 거리를 돌아다니지. 이번엔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서 ‘제일 맛있는 것 좀 주세요.’ 하지. 주인은 웃으면서 ‘그럼 식사하시죠.’ 하고 음식을 내놓고.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돈도 내지 않고 나가는데 아무도 잡지는 않았어. 옷가게에 들어가서 ‘이 옷 주세요.’ 하니까 옷가게 누나가 옷을 그냥 주고, 시장에 나가서 예쁜 그릇 들고서 ‘이거 예쁘네요’ 하니 “그럼 하나 가지세요.” 하면서 웃는 거야. 그 사람은 말이 없다가 “네.” 하고 그것도 주머니에 집어넣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