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8/07/28 01:25 | inureyes

5년동안 살았던 기숙사를 이사했다.

5년 전 2003년 1, 기숙사 20동은 당시 동장이던 류준희 형을 중심으로 영어 자치동2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했다. 비어있던 20동을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완전 자치동으로 바꾸는 계획이었다. 그 한 해 전 2002년 가을학기 기말고사를 3주정도 앞두고 준희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니가 회장 하면, 내가 동장할테니 자치동을 만들어보자.'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지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자치동 계획은 열 개 동에서 세 개 동으로, 그리고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은 한 동 뿐으로 줄어 들었지만, 살아남았다.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동완 교수님의 이야기(라고 쓰고 압박이라고 읽는다) 때문에 20동에 관찰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게 어떻게 이어져 아직까지 살고 있고, 어쩌다보니 넘버33가 되었다.

5년이 흘렀다. 현 동장인 남우의 제안 및 노력으로 20동을 떠나 DOG에서 DICE로 이름이 바뀌면서 16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전의 영어 자치 기숙사가 소규모에 한국인 위주였다면, 이번 DICE 는 규모가 세 배 이상 커지면서 외국인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주 3시간의 의무 영어 프로그램 제도 참가등은 여전히 유지되겠지만, 크기에 따라 시스템이 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될 것이다. 크기가 세 배라고 복잡도도 세 배만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주 말부터 이번주 초에는 장염으로 앓고 있었고, 정신을 좀 차려서 DICEOS라는 프로그램을 하나 설계하고 있다. 사람이 엑셀질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서, 중앙 집중식의 간단한 ERP가 필요하다. 크기는 작아도 시스템이 워낙 복잡해서, 기성 프로그램 중에서 쓸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의 APPC10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본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 때 처럼 TeX 해석기같은 괴상한 모듈을 짤 필요는 없기에 설계는 오히려 수월한 편이다. 단지 워낙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있어서 모든 부분에 가능한한 i18n4을 도입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텍스트큐브 2의 엔트리 헤더 설계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설계 중이다. APPC10은 (저렴했지만) 어느정도 보수를 받고 한 일이었다. DICEOS의 경우 그냥 내켜서 하는 일인데도 마음이 더 편하다.

한 장소에 오래 있게 되면 안주하게 되지만, 동시에 어디엔가에 정착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5년간의 20동 생활에서 배운 것은, 몸이 쉬는 곳과 영혼이 쉬는 곳이 같아지는 삶이었다. 16동에서는 얼마나 오래 살게 될 지 모르겠다. 하지만 DOG에서 받은 것 만큼은 주위의 후배들에게 해 주고 떠나고 싶다. 공부하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사람이 가장 소중한지 등등, 소소한 것들이지만 설명으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수요일부터 며칠동안 이사를 했다. 이사를 마치고 켠 컴퓨터에 ToDo가 가득 채워져 있다. 시간은 흐른다. 존재는 깊어진다.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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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블로깅을 오랜 시간 하게 되면 다른 컨텐츠와 절대 바꿀 수 없는 블로그가 된다. 이 링크는 2003년의 로그 목록이다.
  2. DOG라고 부른다. Dormitory for Our Global dream.. 이라는 문법이 좀 이상하게 정의된 이름인데, 사실 옆에서 보면 20동 건물이 딱 개집 모양으로 생겨서 붙인 이름이었다. 안의 동민들은 puppies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3. DOG에는 나이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별명의 전통이 있다. 그 전에 어떻게 불렸든간에 최연장자부터는 넘버1, 넘버2, 넘버3로 불렸다.
  4. Internationalization 의 줄임말. 앞과 뒤 사이의 글자 갯수인 18로 줄인 것이다.
2008/07/28 01:25 2008/07/28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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