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1/01/26 02:26 | inureyes
세상에서 제일 질리는 애니메이션이 몇 개 있다. 안타깝게도 모두 국산인데, 이름을 대자면 날아라 슈퍼보드, 아기공룡 둘리, 마법사의 아들 코리등등이다. 왜 질리는지는 말이 필요없다. 일요일에 TV를 틀면 항상 나왔기 때문이다. 몇번을 틀어주었을까. 마스터 필름이 망가지지는 않나 걱정해 주었던것도 다섯번째 틀어주었을 때 까지이다. 정말 좋아했던 영화 'The rock'도 다섯번봤지 그 이상은 보지 않았다. KBS뿐만이 아니라 MBC도 당당하게 내세우는 '질리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설날 추석때면 꼭 아침 제사를 함께하는 머털도사이다.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못할만큼 오래되었다.

당연히 이번 추석때도 계속 그 위력을 보여주었다. 또 바보같이 객기로 도술을 부리고 스승을 잃고마는 머털이. 한두번해야 불쌍하지 열번도 가볍게 넘은 지금에 와서는 머털이만 바보만드는 MBC가 괘씸하다. 머털이가 뭘 모를 때에 스승이 머털이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 동서양 막론하고 유명한 갈대의 비유이다. 머털이는 손으로 쉽게 갈대를 꺾지만, 미루나무는 꺾지 못한다. 하지만 바람은 미루나무를 꺾고 갈대는 꺾지 못한다.

약하게 보이는 갈대라도 겉보기와는 달리 강인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용한 예로 많이 쓰이는 교훈이다. 갈대는 유연성이 좋다. 미루나무 껍질을 벗겨서는 바구니같은 것을 만들기는 힘들다. 유연성은 현대 소재공학에서 중요한 모티브중 하나로 연구되고 있다. 자동차를 만들때는 튼튼해야 오래쓴다. 하지만 안에 사람이 탄다는 것을 고려하면 자동차는 그렇게 만들면 안된다. 유연하고 어느정도까지 구부러질 줄 알아야 안에 있는 사람이 부상을 적게 당한다. 유연성이 좋아야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는 소재가 된다.

다시 갈대의 비유를 보자. 갈대의 비유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갈대도 아니고 미루나무도 아니다. 두가지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유연성에 관한 것이다.(우리말로 유연성이라고 하면 유약에 치중하기 쉬운데, flexibility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적당할 것이다. 융통성의 의미가 첨가된다고 하면 될 듯) 머털이가 먼저 폭풍속에 들어가 꺾이는 미루나무와 버티는 갈대를 본다. 그리고 폭풍이 그친 뒤 갈대를 잡아 한 손을 딱 부러뜨려 보인다. 같은 내용이지만 시간의 순서를 역전시켜 보면 보통 생각하는 의미와 약간 달라진다. 미루나무도 실패작이고, 갈대도 실패작이다. 바꾸어 말하면 두 가지 모두에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죽었다가 깨도 머털이는 맨손으로 미루나무를 두동강내지는 못한다. 태풍이 불어도 갈대를 두동강내지는 못하듯.

두가지 성질은 상반된다. 요새 유행하는 '중도걷기' 가 통할 수가 없다. 미루나무냐 갈대냐, 둘 중 하나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중도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하게 한심한 케이스가 될 뿐이다. 유연성은 실제 생활에서는 어떤 일에 융통성있게 대처한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flexibility의 소성계수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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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1/26 02:26 2001/01/2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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