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차안에서 비바람을 만났다. 지루해지면 목숨이 사라지니 지루해질 수도 없었다. 막힌다던 도로는 160km로 달려도 별 일 없었다. 마지막에 와서 엄청나게 막히긴 했지만.
에어컨 틀어놓으면 금방 추워진다. 그렇다고 창을 열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며 창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차 안을 휘젓고 나간다. 시원하지만 비와 함께 들어오면 꽤 곤란해진다.
중앙고속도로는 산을 따라 지나간다. 뒤에서 태풍이 불어오는데 산에는 물안개만 자욱했다. 비경. 그 말이 설명하기에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산이 몽땅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태풍을 반기면서, 이렇게 길을 뚫어 놓고 마음대로 자신들을 휘젓는 인간들을 싹 쓸어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미물인 나에게는 아름다워보였다.
비를 많이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엄청 싫어졌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비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비 자체에 대한 나의 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구나.
하지만 그것에 감정을 싣는 것은 나였다.
한가위 마지막에 찾아온 사상 최대라는 태풍.
의미부여를 하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감정을 싣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게 되잖아.
오늘 서울의 비는 참 싫었다.
용해되지 않은 감정이 이리저리 섞여 끈적거렸다.
아니면 눈 앞에서 계속 나를 압도하던 그 비바람을 지나 온 뒤에, 서울에서 기다리던 비바람에 실망해서 일지도.
언젠가 어머니께서
네가 보는 모든 세상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너다. 네 생각이고 네 느낌이고 네 마음이다. 밖이 더우면 네 안이 더운것이고 밖이 휘몰아치면 네 마음이 폭풍 속에 있는 것이다. 본질을 보아라.
그러셨다.
아직 아들은 그게 잘 안되네요 어머니 -_-;
비와바람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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