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 시대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6/01/29 23:58 | inureyes
설이 왔다. 학교에서 처리할 일 (특히 연구실 이전 관련하여) 이 많아서 그냥 학교에 있을까 하다가 어느순간 명절에서 짐 치우고 있을 모습이 너무 처량해서 그냥 친가 외가를 경유하는 고전적인 길을 다시 다니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들며 변하는 것은 모이는 사람의 수와 달라지는 입장이다. 어릴 적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몇십명의 친척들이 모여 설 자리도 모자라게 빼곡한 마당에서 제사를 지냈던 시절이 생각난다. 국가의 도로 계획으로 한옥이 헐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중에 시간은 흘렀다. 세대가 한 세대 내려왔고 함께 제사지내던 가족들은 각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십수명의 아이들을 낳던 시대가 아니니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세대를 또 한 번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촌형누나들은 조카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아이들이 귀엽다.

*

시간은 특별히 나를 피해가지는 않는다. 스스로 공기를 들이마시기 시작한 후 스물 여섯의 해가 흘렀다. 이젠 맨손으로 친가 외가 찾아가서 세뱃돈을 받아 오는 나이는 지났다. 빈 손이 어딘가 허전하여 과메기라도 세 박스 싸들고 가야 하고, 세배를 하기 보다는 받기 싫어서 아침내내 엎어져 잠잔다. 설 명절 자체도 변하고 있지만, 그 안의 자신도 변하고 있다.

비포장 도로가 포장 도로가 되고, 길게만 느껴지던 길이 어느새 굽은 등을 쫙 펴고 '원래 이 정도 밖에 안 되었다' 고 시위하는 시점이다. 외가로 가기 위하여 부곡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도중이었다. 길은 여전히 밀렸다. 그렇지만 '밀린다'는 개념이 변하고 있었다. 예전이면 당연하게 그 정도는 걸렸어야 할 시간인데, 지금은 그 시간마저 참지 못하고 밀린다고 표현한다.

뉴스는 여전히 설을 맞이하는 시장의 풍경이라든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윷놀이를 벌이는 모습이라든지, 끝없이 밀리는 귀경 행렬이라든지를 보여준다. 뉴스가 원하는 설의 모습은 그런 것이겠지만, 실제 설의 모습은 매스컴이 원하는 모습에서 이미 몇 뼘을 넘게 벗어나고 있다. 시대는 변한다.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지켜져야 할 가치를 구분하는 역할은 누구에게 있을까?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권력' 이라는 말과 함께, 지금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 언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나가는 중에 해보았다. 언론이라는 실체없는 말 보다는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향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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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9 23:58 2006/01/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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