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으로 노트북을 바꾼 후 혼란을 겪는 승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어떤 순서로 맥에 적응하게 되었는지의 기록이다.

맥오에스로 전환한지 6개월이 되었다. 지금은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지만 처음 도착 후 3일동안은 컴맹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었다. 컴퓨터를 굉장히 오래 써 왔지만 도대체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사흘이 되어서야 맥은 컴퓨터 대신 가전제품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엄청난 고생 끝에 알게 되었다.

처음 컴퓨터를 켠 후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인터넷 설정을 하였다. 그 후 파이어폭스를 설치하기 위해서 다운로드 받은 후에 더블클릭하니 아이콘이 들어있는 작은 창이 하나 나왔다. 그걸 클릭하니 실행이 되는데,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면 다시 파이어폭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탕화면에 다운로드 받은 프로그램을 주루룩 늘어놓고 필요할 때 마다 클릭을 해서 작은 창을 연 후 그 안의 아이콘을 눌러서 사용했다. 나중에서야 프로그램 설치는 그 작은 창 안의 아이콘을 끌어다가 밖으로 빼 내면 끝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 설치와 삭제 과정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에는 필요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냥 압축된 프로그램을 받아서 파일을 클릭하면 나오는 창에 들어 있는 아이콘이 프로그램 전체이고, 그걸 끌어서 밖으로 빼내면 설치, 아이콘을 휴지통에 버리면 프로그램 삭제. 단축아이콘이라든지 프로그램 깔리는 경로 설정이라든지 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롬 베이직 ,DOS, 윈도우와 리눅스를 거쳐온 삶에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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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운로드하고 클릭해서 이 창이 열렸을때는 진짜 난감했다. 그냥 저 아이콘을 드래그해서 밖으로 빼면 설치 끝인것을...




그것 하나를 아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프로그램 추가와 삭제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해 발상이 전환되었다. 뭘 어떻게 할 지 알 수 없을 때는 MS 윈도우와 그놈을 다 잊고 그냥 이 상황에서 어떻게하면 될 지 생각하고 해 보면 작동하였다. (CD를 넣은 후 CD를 빼고 싶어서 이러면 되려나 싶어서 바탕화면에 생긴 CD 아이콘을 휴지통에 버리니까 CD가 튀어나왔다. 혹시나해서 해보니 USB 메모리도 그렇더라.) UI 가이드라인이 굉장히 잘 잡혀 있어서 프로그램마다 단축키를 외울 필요도 없었다. 필요한 프로그램이 얼마나 있을까 고민하던것도 사라졌다. versiontracker 하나로도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었고, 프리웨어들로도 충분히 원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OS를 새로 배워야 하는' 불편함은 MS 윈도우에서의 프로그램 설치 삭제의 귀찮음과 프로그램마다 새로 배워야 하는 사용법을 생각하면 금방 상쇄되었다.

웜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도 굉장히 줄어들었다. BSD 기반의 운영체제 환경에서 바이러스를 실행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권한을 주었다가 하나씩 사용자로부터 뺏어오는 방법으로 진화하는 (덕분에 굉장한 부작용들이 있다.) Win32 플랫폼과 달리 애초에 시스템 접근 권한을 사용자에게 준 적이 없는 BSD 이다. 방화벽을 안켜도 열린 포트가 별로 없기 때문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걱정되면 시스템 환경 설정에서 방화벽 켜면 걱정이 끝난다.

동시에 운영체제를 ‘새로 설치하는 일도 사라졌다. 시스템 관리자들은 잘 알겠지만 유닉스 계열은 보통 운영체제를 새로 깔 일이 없다. 계속 쓴다고 느려지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을 망쳤다고 새로 깔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윈도우 95는 95번 설치해야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윈도우 98은 98번 설치해야 된다는 당시 유행어가 있었다. 경험상 윈도우 밀레니엄은 이름따라 ‘밀래?말래?’를 항상 강요했었다. 윈도우 XP는 천배쯤 나아졌지만 여전히 운영체제를 밀고 깔 일은 자주 존재한다. MacOSX도 이름따라 간다. 별 삽질을 하지 않는한 다시 깔 일은 X다.

두번째 관점의 변화는 3개월째에 찾아왔다. 잘 사용하고 있다가 ‘매뉴얼을 한 번 읽어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한 번 읽어보았다. (가전제품의 매뉴얼은 개발자들이 아무리 친절하고 열심히 써 주어도 제품이 소비자에게 가져다주는 흥분에 묻혀 찬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물건이 고장나서야 해를 다시 구경하는 운명을 받고 태어난다.)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거기 있었다. 덕분에 알지도 못하던 - 맥북 모니터의 가운데 옆에는 리모콘을 붙일 수 있다거나, 아답터 위를 열면 전선을 접을 수 있게 되어 있다거나 하는 점들 같은 - 몇가지 기능들을 알게 되었다.



사소한 배려? 들이 굉장히 여러 곳에 들어있었다. 맥북프로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을 쓸 때면 글을 쓰게만 해 주었고 생각을 하고 싶을때면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매뉴얼 숙독과 함께 원래 들어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진짜 강력하면서 쉽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삶을 굉장히 편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가장 최근의 관점의 변화로 맥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 가전제품으로서의 맥북 프로와 MacOS를 사용했다면 지금은 가장 안정적인 UNIX 계열 운영체제인 BSD와 가장 편리한 UI가 결합된 형태로서 MacOS를 사용하고 있다. 예전부터 MacOSX가 BSD계열인 다윈 커널 위에 올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실감할 일은 없었다. 그냥 써도 일반적인 일을 하기에는 충분히 편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터미널을 열었는데 문득 gcc를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애플 홈페이지에서 xcode를 받아서 설치했다. (xcode는 개발자를 위한 라이브러리와 프로그램 모음이다. ) 그 후 사용 패턴은 엄청나게 변하였다.

물리학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위해서 항상 리눅스 클러스터에서 작업했는데 지금은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 iTerm을 열면 익숙한 화면이 나타난다. vi로 작업하고 gcc로 컴파일한다.  시뮬레이션 돌려보기도 한다. 코어 듀오는 굉장히 빠르다. 옵테론 계열인 물리학과 클러스터나 펜티엄D 계열인 연구실 클러스터에 비해서 단일 작업 동작시 월등하다. 결과물이 나오면 gnuplot으로 그려본다. 시뮬레이션 코딩을 하며 x11로의 출력 루틴을 만들었기 때문에 x11을 통해서 바로바로 뽑아볼 수도 있다. 클러스터 환경에선 x11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해 한 번 더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윈도우에선 cygwin을 설치하지 않으면 힘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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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따로 리눅스 따로 사용하던지라 MacOSX를 이렇게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이런 운영체제도 있구나 싶었다.


프로그램 설치를 위해 fink를 사용하면 데비안 계열처럼 apt-get을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지울 수 있다. darwinport로 BSD의 ports를 사용해도 되지만 그냥 fink의 컴파일 설치를 사용하는 쪽이 편했다. 다윈 위에서 그놈이나 KDE를 띄울 수도 있다. (재미로는 해 보지만 UI 측면에서 맥오에스에 아직 한참 뒤쳐지기 때문에 실제로 쓸 일은 없다) 유닉스 계열의 여러 콘솔 유틸리티들의 강력함은 아직 MS 윈도우가 쫓아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레이텍 문서작업을 하기 위해서 MS 윈도우에서 WinEdt와 MikTeX를 복잡하게 설치하며 사용하다가 맥에서 MacTeX를 깔고? 관련 유틸리티와 설정까지 한 번에 끝나는 것을 경험하니 굉장히 허무해졌었다. Endnote에서 갈아탄 Bibdesk나 yep등의 논문과 레퍼런스 정리 프로그램들은 더 편한 툴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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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OSX에서 가장 특출난 기능 하나만 고르라면 spotlight를 고를거다. 구글 데스크탑보다 훨씬 강력하다. 프로그램 실행기부터 스마트 폴더까지 모든 작업을 cmd+space로 시작하게 만든다.



6개월만에 맥오에스에서 다른 오에스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애플의 독점 정책은 정말로 싫어하지만, 제품까지 싫어할 수는 없게 되었다. 몇가지 작지만 유용한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쉐어웨어로 구매하였다. 자잘한 소프트웨어는 안 쓰면 안 썼지 잘 구입하지는 않았던 윈도우 사용 때에 비하여 가장 큰 변화이다. 6개월전, 처음 맥북 프로를 사용하던 날 '이렇게 되는게 없고 불편한 걸 어디다 쓰냐' 고 했었다. 역전되어 있는 상황을 생각하니 참 우습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라고 생각했던 많은 점들은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더 많은 점들 때문에 묻혀버리고 있다. 컴퓨터로 하는 일보다 컴퓨터 자체에 시간을 더 많이 쏟는 사람들에게 매킨토시는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익숙해지는 순간 생각하는대로 되는 새로운 환경과 함께 컴퓨터 관리에 쓰던 남아도는 시간을 돌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기는 시간동안 컴퓨터로 얼마나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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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5 05:27 2006/12/25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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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맥북 리모콘 붙이기

    Tracked from 싸인펜의 Life Log 2007/02/07 23:08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아이맥의 우측하단에 애플의 리모콘이 붙어있는 사진을 몇 번인가 본적이 있었다. 당시엔 제품 광고를 위해서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일부러 붙여논줄 알았었다.리모콘이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착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최근엔 맥북프로에도 리모콘이 달라붙어있는 사진을 보았다. 그래서 맥북프로의 리모콘이 붙어있는 위치에 내 맥북도 리모콘이 붙는지 시험해 보았다. 맥북의 자판 근처를 열심히 리모콘으로 훑고 다녀도 '착' 달라붙는곳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