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산가족들이 상봉을 하고 있다.
전쟁은 전혀 실감할 수 없었던 세대이다. 가끔 어릴 때 TV에 나오던 대학생 형들의 데모나 보고, 독재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때 대학생이었던 외삼촌에게 "저사람들 왜 데모해요?" 하고 물었던 아이였다. 이산가족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고, 통일도 교과서에 나오는 이상일 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서, 어느날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신문을 보고 많은 충격을 받고, 무언가를 느꼈다. 지금 남쪽 북쪽에서 건너온 이산가족 분들이 가족을 만나고 있다.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어야 할텐데- 이상하게 꼭 이산가족의 당사자가 된 느낌이다. 슬픈것도 아니면서 무언지 모를 것이 가슴속을 채운다. 이게 한일까. 개인이 아닌 민족을 이어내려오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 감격에 말이 떨리는 분들도 있고, 적어놓은 것을 외우듯이 말이 딱딱 끊어지는 분들도 있다. 아마 전같으면 말이 끊어지고, 가끔 김일성 장군을 말하는 분들을 보면서 "역시 북한이라 저래." 하고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뉴스에 나오던, 가족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잊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쪽지를 열심히 외우던 남쪽 방문가족들과 다른 것이 있을까. 단지, 차이일 뿐이다.
이런 기분 이상하다.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만날 때의 이상한 느낌은 없어도 좋다. 만나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면, 그런 기분 없어질 수 있을까. 아니, 당연한 듯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옛 기억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다시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보다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어느새 흑백이 되어버린 목탄 그림에 물감을 칠해 그림을 망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 보니 그들의 그림은 물이 담뿍 들어간 수채화였다. 눈에서 흐르는 물이 캔버스를 다 적셔버리기 전에 이젠 끝까지 채색을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