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끝난 날이다. 고시와 나는 직접적으로는 상관이 없다. 주위 친구들이 고시를 많이 볼 뿐이다. 친구들이 고시를 보고 있을 때 그냥 시내에서 소요했다.
일요일은 한산하다. 주말이면 더 붐벼야 할 것 같은데 막상 걸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빌딩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숲 속에 있는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즐겁다.
어제 오랜만에 차민 만났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의식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올해가 벌써 알게된지 10년째인데. 갑자기 다가오는 변화의 격류가 약간은 두려웠다. 대학생활의 끄트머리에 선 사람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 너머에는 벼랑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민은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고 말레이시아에 봉사활동을 하러 떠난다. 할 수 있는 일의 경중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된다. 전적으로 그 판단이 나의 몫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동시에 괴롭다.
꽤 오랫동안 종교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 이후에 차민에게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다. 믿음의 영역을 넘어 계속 다가가려고 하는 나의 종교관 안의 방명록에 여호와가 싸인을 남겼다면 아마 차민의 영향일테니까. 아무래도 그 분이 막나가는 양인 나때문에 고생고생해서 보내준 세 사람중 한 명이니.
8mile을 봤다. 종현이와 박지에게 아마 개봉하기 힘들지 않을까하고 기말고사 후에 이야기 했었는데, 의외로 개봉했다. 욕이 짤리지도 않았다. 왜냐면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어차피 못 알아듣는 음악으로만 들리기 때문에-_-; 에미넴 팬이니 즐겁게 봤다. 즐거운 영화는 아니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슬펐다...
용산을 돌아다녔다. 전자제품 사이를 걸어다녔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익숙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는 듯 했다. 세상은 휘휘 돌아간다. 잠시도 여유를 두지 않는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걸까. 진보를 추구하는 열망은 인간의 본능인것 같다. 조금더 멀리 '인류'를 전파하고 싶은 그런 열망.
안지수씨가 단기유학에서 돌아왔다. 내일이면 모두 한바탕 모일텐데, 아주 약간 걱정된다. 술먹고 민수한테 헛소리하면 안되는데-_-; 지금 잘하고 있는걸까. 모르겠다. 그 판단은 10년후로 넘기자.
월요일은 차민 생일이다. 사흘 후면 아름이 쩌니 생일이다. 아름이쪄니 생일파티를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떠올렸다. 고시를 막 끝낸 아름이와 너무 먼 곳에 있는 쪄니. 이렇게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것 대학 이후에는 처음이지 싶다. 제주도 일주계획과 맞물려서 잠시 머리가 아팠다.
가끔은 목적지 없이 소요하는 이런날이 좋다.
언뜻 이런 기분일때 만나고 싶은 몇몇 사람들이 생각나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