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안녕안녕 소닉인형 가지고 여기 걸었다 저기 걸었다 하다가
이영도씨의 '눈물을 마시는 새' 끝까지 다 읽었다가
눈감았다가 떴다가 일어나서 책자 정리하고
마루에서 운동좀하고 도올씨 정도전 이야기 하는거 봐주고 그러고 나니 열두시.
쳇 이제 하루 지나갔는데.
이런 이상한 기분 안고 있어야 되는구나 남은 시간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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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조심하라고요?"
"그래."
잠깐 생각하던 라수는 곧 쏟아내듯이 말했다.
"예. 그런 말이 있지요. 폐하. 근사하게 들리는 말입니다만, 그 말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는 자기 부정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완성하려면,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어야 하니까요.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의 인생은 완성되지 못한 것, 부족한 것, 불결한 것, 경멸할 만한 것으로 전락됩니다. 이 멋지고 신성한 생이 원칙적으로 죄를 가진 것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자는 다른 사람의 인생마저도 그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자기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건 그건 그 작자의 자유입니다만,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그렇게 보면 문제가 좀 있지요.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어떤 두억시니였어."
라수는 폭소를 터뜨렸다. 사모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라수를 바라보았다.
"감동적이군요. 두억시니가?"
"그게 왜 감동적이지?"
"4년 전까지 우리는 흔히들 두억시니가 죄의 대가로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지요. 신을 잃은 죄 때문에. 그런데 그 두억시니중 한 명이 생은 원래 무죄이기에 완성하려, 속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군요.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두억시니는 우리에게 닥쳐올 변화에 대비하라고 말한 겁니다."
라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다음 계속 말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완전성은, 물론 저는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최소한 불완전성의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작자들이 말하는 완전성과는 전혀 다른 것일 겁니다. 그런 자들이 말하는 완전성은 고정이고 정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기다리는 그 완전성은 어쩌면 무수한, 끝없는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변화하는 완전성이라니, 기묘하군."
"예. 저 자신에게도 그렇게 들립니다. 물론 제 말은 가설일 뿐이고 우리가 첫 번째 종족처럼 되기 전까지는 가설로 남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하기 어렵더라도, 이제부터 우리에게 다가올 변화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더 이상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자기 완성을 부르짖는 사람처럼 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는 항상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론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