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빚어내기/살아가기 | 2005/10/14 14:25 | inureyes
(세상의 나이 먹어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두말할 필요가 없이 바쁘다. Crossroads의 일차 작업은 끝났지만, 그 뒤에는 양자역학과 통계역학과 전기역학이 기다리고 있다. 차례차례 만나고 있는 중이다. 약간의 좌절과 슬픔도 함께 받고 있다. -그렇지만 배움 그 자체는 언제나 재미있다-

빡빡한 커리큘럼을 따라가고 있으면 시간은 저절로 사라진다. 학부 시절부터 경험했던 일이다. 시간이 언제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싫다. 부족하다는 느낌은 곧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해야 하는데 못 한 일이라거나, 끝내야 하는데 끝내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밀린 일이 없는데도 그러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머릿속 어딘가에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외치고 있는데, 표면까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 생각들이 정말 중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부터 억지로라도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아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최소 하루에 30분은 무조건 비운다. 그 시간동안은 마음속에서 초조하게 외치고 있는 생각을 끄집어 내려고 애쓴다. 또는 그렇게 건져 온 생각을 계속 굴리거나 정리한다. 다양한 생각들이 건져올려진다. 때로는 생활에 대한 단상이다. 가끔은 세상에 대한 느낌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호기심이다. '그것은 왜 그럴까?'

이러한 생각들 중에서 생명이 긴 생각들이 있다. 하루에 30분씩 그 생각들을 계속 굴려본다. 그러다가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생각들이 있고, 그렇지 못하고 봄눈처럼 사그라드는 생각들이 있다. 생각들의 수명은 일정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계속 돌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 자신이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자신을 만들어낸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의 기대처럼 '내가 하고 싶은 생각들' 만을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부족함으로 가득 찬 자신을 마주하였다. 끝없이 넓어지기만 하는 세상은 내용은 커녕 그 크기를 보기도 힘들었다. 세상은 탐구할 대상이기 이전에 먼저 배워야 할 대상이었다. 일단은 모두 배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지만 배움 자체에만 치중하다가 서서히 알게 된 것이 있다. 궁금한 것을 모두 알려면 죽을 때 까지 배워도 충분치 않을 것이며, 정말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의 핵심은 그러한 지식의 축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세월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돈오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이 하루에 30분씩을 비우게 하였다.

재작년 가을 개나리를 보며 가졌던 이상함이 작년 봄의 기후 변화 모의 실험을 해 보게 하였다. 작년 여름 방학에 학교 네트워크 상태를 보면서 시작했던 생각이 결국에는 졸업 논문이 되었다. 답이 있는 호기심은 그 답을 배우고, 답이 없는 호기심은 하나씩 해결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오늘의 30분은 나중에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모양이 되어 머리를 즐겁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얼마되지 않는 30분이지만 정말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그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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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4 14:25 2005/10/1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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