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로 책 관련 블로그를 따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환경은 웹이 제일인 것 같다- 처음부터 하나를 따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은 아주 예전 워드프레스 1.2가 나왔을 때 테스트겸 설치했다가 그런 용도로 사용하게 되었었다. 별다른 이유로 블로그가 비공개인 것은 아니고, 책읽는 취향이라거나 그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비공개로 놓아두었다. 온갖 사람들과 괜히 다툴 일 만드는 것은 귀찮다.
그동안 책은 정말 질리도록 많이 읽었고, 그 덕분인지 책에 대한 감상에는 웬만해서는 수긍만큼이나 비판이 많이 들어간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책은 절대 불변의 지표가 아니다. 단지 바로 만날 수 없는 저자와 의사소통을 하는 아주 오래된 수단이다. 나의 생각이 저자의 생각과 다른 면이 있다면 비판하게 된다. 또한 번역서일 경우 번역자에 대한 모자란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한다. 비판과 비난은 다른 개념이지만 많은 경우에 비판은 비난으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저자나 번역자에게 비판에 대한 답변이나 반론을 듣는 것은 좋아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고 토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비판에 대하여 상처입는 저자들도 있다. 그러한 경우 비판과 비난의 차이를 설명해야 하는데, 텍스트로 표현되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인격을 구분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전자를 비판하면 후자를 비난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힘든 경우는 저자도 아니면서 비판의 방어에 저자보다 더 열을 올리는 경우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사람이 옹호하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나보다 높은 적은 없었다. 물론 잘 몰랐던 부분이나 관련된 텍스트에 대하여 소개를 받고 내 이해가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맹목적인 주장과 비판아닌 비난으로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독자들에게 책은 이미 저자와의 만남의 통로가 아니다. 텍스트가 진리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이 아니라, 텍스트가 진리라는 절대무변의 차원에서 책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책에 대한 의견은 (특히 신간이나 베스트셀러인 경우) 그다지 잘 말하지 않게 되었다. 토론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는 치열한 이성의 만남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바에야 구태여 왜 흙탕에 발을 담그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라 나름대로 비판받을 가치가 있는 책에 대해서는 생각을 계속 정리하고 있다. 비공개인 책 블로그는 그럴 때 참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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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고, 그러한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책의 내용을 읊거나 단순한 감상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하면서 그 책을 평가하거나 원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좋다. 초중고의 책읽기 교육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생길 수 있을것도 같다. 하지만 김소월 시의 속의미까지 외워야하는 지금의 세태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바라는 것 까지는 무리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