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에 내 컴퓨터가 생기다. Athlon XP 2500.
운영체제를 설치하다가 이 녀석으로는 어떤 일들을 하고 어떤 추억들을 만들게 될지를 생각하였다. 지금까지 거쳐간 컴퓨터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즐거운 추억들 골머리를 썩었던 기억들 등등 희노애락의 조각들을 가득 건져내보았다.
물건은 자체로는 감정도, 의지도 없지만 그 사용자에 의하여 감정과 의지가 불어넣어진다. 세상은 자신과 타자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행위는 상대가 생물인가 무생물인가하는 판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전쟁통에 군인으로 참전하여 사람을 죽일 때는 상대가 생물이라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한다. 반면 영화나 책에서는 무인도에 표류하면 물건을 가져다놓고 친구삼아 대화하기도 하더라. 결국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소통 그 자체이다. 소통의 반대편에 실제로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껏 만나고 함께 엉켜온 수많은 사람들과, 지금껏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컴퓨터들처럼 연구실의 새 컴퓨터에도 앞으로 함께 지낼 시간에 대하여 한껏 기대를 담아본다.
연구실에 있는 FC3는 전부 64비트 버전이라 설치할 수가 없었다. 받으려면 시간이 걸릴텐데 약간은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