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든다는 것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5/04/10 13:39 | inureyes
철이 든다는 것은 자란다는 말이나 어른이 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열살의 소년이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오십줄의 국회의원이 자신만이 현인인 양 아무리 윽박을 질러도 그 사람들에게는 철이 들었다는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그 쪽의 입장에서 '당신은 철이 들지 않았다'는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뭘 모르길래 철이 덜 들었다고 하는거야?'

대학교에 들어가도 철이 들지는 않는다. 돈을 번다고 철이 들지도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다고 철이 들리도 없다. 철이 든다는 말은 애매한 말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철이 들었는지 들지 않았는지는 비슷하게들 안다. 신기한 일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20대 중반 즈음이 되면 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빨리 철이 들고 싶어도 철이 들 수 없는 이유는 그 과정이 본인의 의지나 노력과 관계없기 때문인 듯 하다. 흔히들 한 세대를 30년 주기로 잡는다. 그건 요새 이야기이고, 지금보다 일찍 결혼하였던 과거에는 한 세대를 대략 25년 정도로 잡아도 될 것 같다. 한 사람이 20대 중반 정도가 되면, 삶을 경험한다. 그 갑작스러움은 사춘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자신과 함께 살아왔던 할아버지 세대가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고, 별다르게 보이지 않았던 바로 윗터울 친척들과 지인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본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같이 살아갈 것으로만 여겼던 주윗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은 수많은 파도들이 어울려가는 것이다. 그 안의 총체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속에 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무살 중반까지 나이들어야 한다. 그 이전에 자신이 철이 들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어린 날의 치기일 것이다.

철이 들면 삶에 겸손해지게 된다. 세상이 말하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생각하게 된다. 보편적인 지식이라고 믿던 것들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어째서 세상에서 돈이 가장 큰 가치인지, 아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위장하며 인간을 먹고살기 위해 살아가는 동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살기위해 먹고, 먹기위해 버는 사람들이 안타깝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째서 생명에게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삶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지 알게 된다. 동시에 세상이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철이 들면 지혜를 쌓아 나중에 멋진 노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중학 수학에서 고차 방정식에서의 인수분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런데 막상 다른 사람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인수분해를 가르치기 위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많이 해 보면 돼' 이다. 아마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듣게 되면 '철 들면 다 알게 돼'라고 대답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철이 드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결혼할 때 즈음 되면 다 알게 돼' 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당길 수도 없고 뒤로 미룰 수도 없는 그 과정을 보며, 오래 전에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들었던 어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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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0 13:39 2005/04/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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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rnis - kir kirest ruganja 2005/04/10 19:48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저는 아직 어리기에, 이런글을 보면 자만이 조금이나마 들어가는 군요^^

  2. ris81ryu 2005/04/11 02:08

    어릴 때는 자신이 꽤 큰 줄 알고 자만했지만 대강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자기가 풋내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 같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도 스스로를 풋내기라고 인정하고 있기는 싫더라. 겸손하지만, 나름대로 세상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노라고 30이 될 때까지는 말하고 싶고, 노력하고자 한다.

  3. enoia 2005/04/11 13:40

    나는 평생을 살아도 스스로 "나도 이제 좀 철들었지?" 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죽는 자리에서는 말할 수 있을까.

  4. daybreaker 2005/04/12 17:52

    최근에 교황부터 시작해서, 형 친구의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또 어제 (같은 나이인) 서울과학고 학생회장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한순간에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점점 더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인식이 익숙해지고, 또 어렸을 때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하던 것이 그렇게 어리석은 말임을 느끼게 되었다는 건 조금씩이나마 철이 들기 시작했다는 걸까요?
    아직 철이 들지 않아(-_-) 말씀하신 내용의 전부를 마음으로 공감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씩 더 의미있게 와닿습니다. (철이 들수록 그 의미를 간단하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거겠지요.)

  5. inureyes 2005/04/16 02:51

    다들 다양한 생각들 감사합니다.

    제가 요새 덧글 달 시간도 빠듯해요 ㅠ_ㅠ

  6. ktysily 2006/06/29 23:33

    제가 32살의 8살난 딸이 있는 유무녀입니다. 저에 삶도 그렇게 순탄지는 않아서 인지 저의 나름대로 느낀 건 철이란 나자신을 생각하는 것보다 다음 사람 나에 사람 그 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 하는 것 이라 생각 합니다. 누구나 나로인해 고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미안하고 죄스럽고 내가 해야할일(직업에 귀천은 없으나 열심히 노동의 대가를 얻는 일)이 남의 시선을 느끼기 보다는 자기자신의 당당하고 성실하게 책임감을 갖는것이 옛 어르신들이 말씀하신는 철이란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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