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 해당되는 글 2ATOM

  1. 2009/11/24 inureyes 4주 훈련 7
  2. 2006/09/21 inureyes 세상엔 별의별 것이 참 많다 4

4주 훈련

빚어내기/생각하기 | 2009/11/24 12:22 | inureyes

YEHSenior에 보낸 글.


다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10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논산훈련소에 훈련을 다녀 왔습니다. 이제 나온지 딱 일주일인데, 몸도 머릿속도 재활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서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있습니다. 때 되면 자고, 새벽에 깨고 있습니다.

훈련소는 꼭 '시간과 정신의 방' 같아서, 시간이 거의 멈춘채로 안 가더랍니다. 처음에는 정보없음과 할 일 없음이 주는 허여로움에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업무 관련 내용을 편지로 다 보내놓고, 들고 들어간 objective-C 책을 다 읽고 나니 3주차부터는 정말로 할 일이 없어졌는데 그 이후부터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몸은 힘든데 시간이 멈추더군요. 그 때의 느낌과 여러 생각을 노트에 빼곡히 적어 두었는데, 나와서 한 페이지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중반즈음 어머니께서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생후 18개월 이후 문자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일이 없었던 네 인생이었으니 그 시간의 귀중함을 알고 1차원적인 사고만 하며 지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편지 이후에 지내는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허허허 웃으며 '이해합시다' 하면서 살았더니 보살이 되더랍니다.

몸이 힘들면 생각이 단편적이 되고, 당장 눈앞에서 괴롭게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감정선을 지배하게 됩니다. 머리를 비우니 마음도 허허로워 지더랍니다. 감정선을 넘어가니 시스템이 보이고, 모두가 안타깝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해묵은 주제인 '인간과 시스템'을 생각 창고에서 도로 꺼내서 다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X같은 군대' 'X같은 세상' 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대상들이 정말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에 지배당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시스템을 만든 것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정말 한심할 정도로 불쌍합니다. 스스로에게 결함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자신을 구속하는 틀을 만듭니다. 스스로도 철인superman에서 한참 떨어져 있지만, 기실 모든 사람들은 철인은 커녕 동물에 가깝습니다. 군대는 그 점을 또렷하게 보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공영을 위한 최선의 길이 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하지만 모두가 군대를 만듭니다.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상호 신뢰가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최적의 방법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상호 신뢰는 생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인식의 틀은 그 크기가 작아 어느 이상을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그릇 안과 밖으로 피아를 구분합니다. 때로는 그 그릇의 크기가 처참할 정도로 작아서, 가족에 머무릅니다. 슬픕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제 생각의 주제는 what lies "beneath", '무엇이 인간을 지배하는가, 인간과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몇 년을 생각하던 주제였지만 한 달 동안의 그 짧고 긴 경험이 질문의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안겨 주었습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입니다.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표현에 그 답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병치레 삼아 나흘째 집에 틀어박혀 생각합니다. (감기조심하세요)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는가,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가족의 번영을 위해서 사는 것은 동물과 같은 목적입니다. 인간이 그것이 아닌 그 너머를 추구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what lies "beyond" 인간이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거나 하는 식의 허영이자 자기 위안이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고 싶습니다.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합니다. 제자리에 멈춘 생명은 도태됩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답이, 아마도 진화의 목표에 대한 답의 작은 일부이지는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 '개와 소들의 세상'에서 돌아온 소 1인이었습니다.

덧) 나오기 이틀 전에 스물 두살 현역병인 그 곳 교관과 잠시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분대장님은 나중에 제대 하시고 복학하시면 이 곳에서 익힌 선후임 관계나 생활 습관을 모두 잊어버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곳에서 배운 것은 사회 생활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인성의 어느 부분을 희생하게 될겁니다."

"훈련병도 퇴소 후 이 곳에서 익힌 기술들을 속히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힘들게 배웠고, 몇몇은 재미 있었을지라도 4주동안 배운 모든 것은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쓰는 살인 기술들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24 12:22 2009/11/24 12:22
트랙백이 없고, 댓글 7개가 달렸습니다.
ATOM Icon 이 글의 댓글이나 트랙백을 계속 따라가며 보고 싶으신 경우 ATOM 구독기로 이 피드를 구독하세요.